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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화제]3대째 「고약집」가업잇는 임재형씨

입력 | 1997-04-24 08:51:00


하고약 조고약 차고약 이명래고약… 종기가 많았던 시절을 살아본 30대중반 이상의 사람이라면 추억처럼 고약을 기억한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종근당빌딩 뒷골목에는 고약의 대명사격인 이명래고약집이 지금도 있다. 「명래한의원」 「이명래고약집」으로 3대째 맥을 잇는 주인공은 한의사 임재형씨(53). 창업주 이명래의 사위의 사위다. 『창업주께서 프랑스 선교사들을 따라 다니며 익힌 요법에 민간요법을 더해 충남아산에서 개업한 해가 1906년이니 벌써 90년전 일입니다. 고약집은 충청도 전라도 사람들이 쇄도하면서 날로 번창했고 여세를 몰아 서울로 입성하게 됐습니다. 이곳 충정로 일대에는 해방 이듬해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고약의 전성시대는 지났다. 위생상태가 좋아져 고약의 쓰임새가 줄어든데다 다른 좋은 약도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희대 한의대출신으로 지난 70년 이 일을 시작한 임씨는 『한의원을 별도로 개업하느냐,가업을 잇느냐는 문제로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장인의 뒤를 따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때부터 고약은 이미 내리막길이었다. 『요즘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일본에서 오는 사람도 있어요. 종기 관절염 유선염 환자들이 많지요. 종합병원 환자들도 옵니다. 그러나 옛날에 비하면 개점휴업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엔 친구회사로 전화를 해도 젊은 아가씨들이 「이명래고약집」을 알아듣지 못하지요』 이 집에서 만드는 고약은 다섯 종류. 염증 부종 통증 욕창 등에 듣는 약으로 이명래고약의 제조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 몇년전 일하던 사람이 그만둬 이제는 임씨 혼자 고약을 만든다. 내방환자를 중심으로 고약을 제조하고 환자를 돌보는 전통가업은 세딸을 뒀던 이명래씨의 둘째사위(지난해 작고)가 대를 이어 임씨까지 내려왔다. 이와는 별도로 현대화된 이명래고약도 있다. 약국에서 팔리는 이 고약은 이씨의 셋째딸 이용재여사(兪鎭午·유진오전신민당대표 미망인)가 50년대 중반 「명래제약소」를 세워 대량생산하면서 「종기특효」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기는 양가가 마찬가지다. 『이 일을 누군가는 이어야 할텐데 고민입니다. 일본에는 3백년이 넘은 고약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1백년도 넘기기가 힘이 드니…』 〈양영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