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안팎에서 「金賢哲(김현철)청문회」가 한보사건과 국정개입의혹의 실체를 어느 만큼이라도 밝혀주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현직대통령의 아들인 현철씨의 증언에는 애당초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철씨에 대한 사법처리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이 여권의 분위기다. 정국의 전도(前途)가 극히 불투명한 것은 이같은 대형 이슈들과 표리(表裏)를 이룬다. 따지고 보면 갈수록 증폭되는 「김현철 의혹」은 그의 「철없는」 처신보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실정(失政)에서 기인된 측면이 강하다. 「김현철문제」는 김대통령의 행보를 가로막는 걸림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시적이나마 김대통령에게 직접 날아들 화살을 막아주는 방패기능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김대통령의 운신과 향후 정국풍향도 「김현철 파문」이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얘기다. 아직 정국의 키는 김대통령이 잡고 있다. 「김현철문제」는 곧 「김대통령 문제」이기도 하다. 현철씨가 사법처리될 경우 김대통령이 직면할 처지에 대해서는 양론이 엇갈린다. 첫째는 아들까지 희생시킨 마당에 더이상 주저할 게 없다는 생각에서 김대통령이 뭔가 대반전(大反轉)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른 하나는 민심의 속성상 김대통령이 더이상 국정운영의 키를 잡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견해다. 즉 이미 제기됐던 헌정중단론의 배경논리다. 여권내에서는 김대통령이 이미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기력을 잃었다는 견해도 적지 않게 대두된다. 정국을 반전시킬만한 마땅한 카드도 없다는 얘기도 뒤따른다. 다만 대선정국이 조성되면서 「한보수렁」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게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없지 않다. 여권 핵심인사들이 『별무대책』이라며 『일단 흘러가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탈(脫)한보정국」 기류가 정치권 저변에 폭넓게 형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야권도 내심 이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조만간 대선정국으로 전환할 정치권 내부의 조건은 이미 갖춰진 셈이다. 국민회의의 대선후보선출 전당대회(5월19일)라는 대형 이벤트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신한국당의 대선예비주자들도 이 때를 전후해 잇따라 대선도전을 공식선언하고 세확산 경쟁에 돌입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권이 독자적으로 정국을 주도할만한 상황이냐 하는 점이다. 우선 검찰의 한보수사와 사법처리 범위에 따라서는 정국양상이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鄭泰守(정태수)리스트」에 포함된 여야중진들의 사법처리 여부는 여야 후보결정구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현정권이 안고 있는 아킬레스 건인 92년 대선자금문제가 불거지면 엄청난 폭발력으로 정국을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자칫 정치권 전체가 예측불허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물론 여야 모두 경계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국회 한보청문회와 검찰수사가 종료된 직후 여야영수회담 등을 통해 정국의 가닥을 다시잡아 나갈 것으로 보인다. 구심점없이 표류하는 여권은 대선후보 조기가시화로 난국돌파를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무튼 「5월」은 정국의 향배를 가늠하는 큰 「분수령」임에 틀림없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