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아이를 유괴하고 집에 전화해서 돈 뜯어내는…』 초등생을 납치 살해한 뒤 몸값을 요구하다 25일 경찰에 붙잡힌 최모군(16·서울 D공고 1년)은 『요구한 돈 4천만원도 전화하는 순간 머리에 떠오른 것이지 어디에 쓰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진술했다. 최군은 지난 18일 오후7시15분경 서울 용산구 용문동 H오락실에서 오토바이경주오락을 하고 있었다. 뒷자리를 흘끗 보니 박모군(9·서울S초등 4년)이 앉아 있었다. 30분뒤 자리에서 일어난 최군은 다른 Y오락실에서 오락을 한판 더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자물쇠가 잠긴 자전거를 낑낑대며 끌고 가는 박군을 다시 만났다. 『오락실에서 자전거 열쇠가 든 지갑을 잃어 버렸어』 박군은 자전거 뒷바퀴쪽을 들어주는 최군에게 장난감카메라를 선물로 주면서 『우리집은 H아파트고 엄마는 디자이너야』라고 말했다. 『너희 부자구나』하고 대꾸하는 순간 최군의 머릿속엔 폭력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최군은 근처의 불타버린 폐가로 박군을 데리고 갔다. 호주머니에서 청테이프를 꺼내 박군의 손과 발을 묶었다. 최근은 가슴이 뛰었으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 듯」 『형 풀어줘』하며 사정하는 박군의 입뿐아니라 코에도 테이프를 붙였다. 숨을 쉬지 못해 잠시후 축 늘어지는 박군을 담요로 덮고 도망쳐 나왔다. 사흘 뒤 동네 골목길 전봇대에 붙은 박군을 찾는 전단을 본 최군은 박군집에 네차례 전화를 걸어 4천만원을 요구한 뒤 지난 25일 약속장소에서 서성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26일 보도진의 카메라 5대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는 서울 마포경찰서 조사실에서 고개를 떨군 최군은 자신이 폭력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와 있음을 이제야 깨달은 듯 연신 울먹거렸다. 〈이철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