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때만 해도 가장 인기있는 문학장르는 서사시(敍事詩)였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나 밀턴의 「실락원(失樂園)」으로 대표되는 서사시의 위세는 이후 급속히 퇴조한다. 틀에 박힌 시구 대신 일상적인 어투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설이 널리 읽히면서 서사시를 밀어낸 것이다. 다양한 영상매체의 출현으로 최근 소설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위치는 확고하다 ▼요즘 책방에 가보면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소설체로 풀어 쓴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소설 동의보감」이나 「소설 토정비결」 등 「소설」이란 말이 제목에 붙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한다. 외국의 역사 인물을 다룬 「소설 단테」나 「소설 소크라테스」까지 나와 있다. 소설문체가 지니는 대중성과 친밀성을 활용해 난해한 내용을 쉽게 전달하겠다는 의도다 ▼조선시대에도 은밀히 읽는 한글소설은 큰 인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은 궁녀들이 궁궐 바깥에서 한글소설을 구해와 읽는 것이 크게 유행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을 상당히 남겨놓고 있다. 소설내용을 손으로 베끼면서 궁궐내에 궁체(宮體)라는 한글서예체가 발달하기도 했다. 한문소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읽기 쉬운 한글소설의 인기를 따를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한글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은 흥미진진한 줄거리에 조선조 사회상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고전(古典)이다. 그런데 이 소설보다 1백여년 앞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소설 「셜공찬전」이 새로 발견됐다고 한다. 16세기초 蔡壽(채수)가 쓴 이 소설은 당시 정치상황을 비판한 내용으로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는 학계의 평가다. 주의깊게 찾아보면 창고 깊숙이 묻혀 햇빛을 보지 못한 고전들이 더 있을 것이다. 이번 발견이 이런 분야에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