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상처를 여전히 깊숙이 간직하고 계신 여러분께 저의 손을 내밀어 화해를 간청하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27일 밤 한국에서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상영되고 있는 비슷한 시간, 스페인에서는 사건발생 60년만에 로만 헤르초크 독일대통령이 게르니카 학살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보내는 사과서한이 낭독됐다.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참사추도회에서 헤르초크대통령은 『과거를 똑바로 응시하고 독일 공군조종사들의 범법적 개입을 명백히 인정하고자 합니다』고 밝혀 독일의 잘못을 최초로 공식시인했다.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4월 26일. 프랑코 총독을 지원하던 나치독일 공군의 최정예 콘도르 비행단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 있는 인구 5천명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한다. 명분은 당시 이 도시의 공화파를 축출하고 프랑코파의 승리를 돕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상은 이후 벌어질 2차대전의 민간인 공습을 위한 연습용 폭격이었다. 이 공습으로 무방비 상태의 게르니카는 도시의 3분의2가 파괴됐고 1천∼1천7백명에 이르는 주민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집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63점의 연작으로 이 학살의 참상을 고발했지만 프랑코 정권은 75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개입 사실을 부인했다. 독일정부도 3백만마르크(약 15억원)상당의 스포츠 시설을 제공한 이외에는 이 사건을 외면해왔다. 그러나 헤르초크 대통령은 이날 독일 정부를 대표해 「가공할 만행」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고 싶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권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