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태풍」으로 92년 대선자금의혹의 껍질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한보사태의 「몸체」도 결국 대선자금일 것이라는 심증이 짙어지면서 조만간 대선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92년 대선 때 金泳三(김영삼)후보가 쓴 선거자금은 얼마나 될까. 창구가 다양하고 영수증없이 집행되는 선거자금의 성격상 92년 대선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뿌려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단서를 근거로 개략적인 규모를 추산해볼 수는 있다.
지난 92년 대선직후 김영삼 민자당후보 진영은 선거운동기간 중 1백21회 유세를 했으며 3백25만6천명이 유세에 참여했다고 공개했다. 유세참여인원은 「동원비」 지급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관계자들은 『당시 동원청중 1명당 3만원씩이 지급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동원비만 해도 어림잡아 1천억원가량이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후보가 유세를 벌이는 곳에선 유세당일 당소속 시 도의원이나 시 군 구의원 등 지역유지들을 상대로 한 20∼30개의 식사모임이 있었다. 참석인원은 1백50∼2백명으로 1명당 3백만원이 든 봉투가 건네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기에다 점보트론 대여비용 등 유세기본경비를 합치면 총 유세비용은 2천억∼3천억원대를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 관계자의 진술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후보의 유세가 있기 전날 당사무처 담당직원이 가방 2개에 1백만원이나 10만원권 수표로 20억∼30억원 정도를 가지고 현지에 내려갔다. 이 돈은 유세 한 번이면 바닥이 났다. 돈이 모자라 5억원정도를 현지 은행지점을 통해 긴급수혈받기도 했다』
유세비용 못지않게 지구당선거대책비 역시 천문학적이다. 92년 대선 당시 민자당은 격전지역인 서울 등 수도권은 7억∼10억원, 절대우세지역인 부산 경남과 절대열세지역은 호남은 3억원, 기타 지역은 5억원씩을 「지구당선거대책지원비」로 내려보낸 사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전국 2백37개 지구당에 평균 5억원씩만 잡아도 지구당선거대책비 총액은 1천억원을 크게 웃돈다.
이와 관련, 자민련은 『대선기간 중 당시 민자당 지구당위원장들이 중앙당으로부터 자금을 수령한 계좌 15개를 증거로 확보해놓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92년 대선 당시 민자당의 대선자금지출을 담당했던 金載德(김재덕)신한국당대전시지부홍보부장이 민자당이 공식집행한 대선자금만 3천1백27억원이라고 밝혔다는 야당측의 폭로가 당사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에 근접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당원연수비용 대선출정식비용과 대선기간 선거대책본부경비, 32개 직능단 활동비도 추산은 쉽지 않으나 엄청난 액수에 달했을 것이 틀림없다. 김후보의 3대 사조직이었던 「민주산악회」와 「나사본」 「중청」의 운영에 들어간 돈도 2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민주산악회만 해도 당시 15개 시도협의외와 3백13개 지부에 1백50만 회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민자당이 대선 때 사용한 홍보비는 당시 예산명세서가 유출돼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92년7월에 작성된 이 서류에 나타난 홍보비 총액은 5백35억8백만원으로 이것만으로도 김후보가 선관위에 신고한 액수(2백84억원)나 법정선거비용상한액(3백67억원)을 상회한다.
역으로 수입측면에서 92년 대선자금을 조명해도 결과는 비슷하다. 우선 한보사태 와중에서 야당은 끊임없이 92년 대선 때 한보비자금 6백억원이 김영삼후보 진영에 유입됐다고 주장했다.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이 대선직후 이를 자랑하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으나 정부의 한 사정관계자는 최근 『한보가 제공한 대선자금은 6백억원보다 많으나 1천억원은 안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보의 경우는 다소 특수한 사례라 하더라도 다른 재벌기업들도 대부분 상당액의 정치자금을 당선이 확실시됐던 김후보 진영에 제공했을 것이라는데 정치권에 별 이설이 없다. 대선 직후부터 『대재벌은 1백억원대, 중소재벌은 수십원대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경제전문가들이 92년 대선자금규모를 1조원 내지 1조5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92년 대선자금의혹 중 가장 두터운 베일에 싸인 부분이 「盧泰愚(노태우)비자금」의 대선자금 유입규모. 야당측은 3천억원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이와 관련한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언급은 노씨의 핵심측근이었던 安秉浩(안병호)전수방사령관의 진술이 유일하다. 그는 작년초 모 시사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1천4백억원이 노대통령으로부터 YS(김영삼대통령)에게 대선지원금으로 넘어갔다』고 밝혔다.
지난 95년10월 당시 민주당 朴啓東(박계동)의원의 폭로로 「노태우비자금」이 문제돼 노씨가 대국민사과를 했을 때 측근들은 사과문에 대선자금에 대한 언급을 포함시킬지 여부를 놓고 무척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문 작성에 관여한 한 측근은 『논란 끝에 전직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 대선자금에 대한 언급을 사과문에 포함시키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전했다.
노씨의 아들 載憲(재헌)씨도 작년초 한 지방신문과의 인터뷰에서 『(92년 대선 때 아버지가) 당시 민자당후보에게 쓸 만큼은 주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으나 파문이 일자 재헌씨는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한 적이 있다.
올해초 서울여의도 정가에 나돈 출처불명의 괴문서는 「지난 90년초 3당합당 후 92년 대선 때까지 노씨가 김대통령에게 7회에 걸쳐 8천7백50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괴문서에 나와있는 「노씨 지원금」명세는 △3당통합을 전후해 1천5백억원 △90년10월 내각제파동때 2백억원 △92년초 4백억원 △92년5월 전당대회전 6백억원 △92년9월 노씨가 민자당 탈당때 3천억원 △92년12월 대선직전 1천억원 △정권인수자금 2천억원 △청와대이사 축하금 50억원 등 구체적으로 일시와 명목을 특정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92년 대선자금에 대해 사정당국이 이미 내사를 마쳤다는 얘기도 설득력있게 나돈다. 현정권 출범 이듬해인 94년2월부터 5월까지 30대재벌 관계자들을 상대로 대선자금 유입규모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사정고위관계자도 『김대통령은 자신감에 차있던 집권초기 대선자금을 공개하고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도 있다』고 말해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국민회의는 92년 대선 때 김영삼후보가 1조원정도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민련은 공조직에 4천억원, 사조직에 2천억원 등 6천억원정도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신한국당 관계자들은 『92년 대선 때 당시 金大中(김대중)민주당후보도 선관위에 신고한 액수는 2백7억원이었으나 실제 사용한 액수는 1천억원이상일 것』이라며 『야당도 대선자금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