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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어른이 부끄러운 어린이날

입력 | 1997-05-04 20:28:00


연휴로 전국이 북적거리는 어린이날이다. 곳곳의 고속도로는 밀려드는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도시 근교 유원지와 고궁 공원 백화점은 어린이들을 앞세운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어린이날이 마치 어린이들에게 행락을 가르치는 날인양 어른들의 경쟁적인 연휴나들이가 어린이들에게 오히려 짜증을 안겨주지나 않을지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어린이날 하루라도 일에 쫓겨 무관심했던 가족들과 함께 신록이 돋아나는 자연을 찾아 나서고 그동안 막혔던 대화를 나누며 가족의 정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어린이가 주인인 요즈음 우리네 핵가족 풍토에서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어린이들에게 반드시 물질적 심리적 보상을 다시 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그보다는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부끄러운 삶을 살고나 있지는 않은지 차분하게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값지지 않을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요즘처럼 일그러진 때는 일찍이 없었다. 아이들과 한자리에 같이 앉아 TV를 보기가 민망할 만큼 부자관계가 세상의 냉소를 사고 있는 시대다. 그리고 자식을 바르게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스레 되새기게 하는 세월이다.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 보다는 겸손 예절 품위 희생을 가르치는 매 한번이 더 값지지 않을까를 돌아보게 하는 시절이다. 부모와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에 굶주린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한편으로 버려지고 한편으로 탈선하는 예를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의 가족이기주의와 과보호가 결과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을 흐리게 하는 빗나간 사랑으로 작용하는 면도 크다는 것을 반성해야 할 때다. 어린이는 어른을 보고 배운다. 어른들의 경쟁과 과소비와 황금만능주의가 어린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사주고 북적거리는 놀이터나 유원지로 나가 하루를 인파 속에서 시달리는 것이 어린이에 대한 봉사이자 사랑이라는 생각은 바꿔야 할 때인 것같다. 그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오순도순 옛날 이야기라도 나누는 편이 더 교육적일 수 있다. 가능하다면 가족이 함께 주변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찾아 사랑을 나누는 보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오늘 어린이날에 이어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18일)이 이어진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이 부끄러움 없이 가정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이기적이고 무례하지 않게 자라도록 어른들이 스스로를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계절이다. 건강한 사회는 바로 건강한 가정에서 싹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