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사업을 하는 A씨는 서울로 대학에 진학한 자녀와 함께 상경했다. 자녀가 살만한 집을 구하던 그는 마침 적당한 아파트가 나와 계약하기로 했다.
이전에는 제주의 거주지에서 아파트 매매에 필요한 서류를 떼야 했으나 이제는 전자주민카드를 갖고 가까운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 등 관련 서류를 일괄 발급받아 계약을 마무리했다」.
「제주지역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B씨는 전자주민카드로 인해 낭패를 당했다.
전자주민카드를 잃어버린 그는 때마침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급성맹장염에 걸렸으나 병원에서 신원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했다」.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전자주민카드(또는 주민카드)의 미래상 두가지 사례를 구성해 본 것이다.
정부는 전자주민카드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내세워 내년 4월부터 6개월동안 제주도에서 전자주민카드 제도를 실험 시행한 뒤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16개 시민단체들은 이미 「통합전자주민카드시행 반대와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고 이 모임의 제주지역 위원회도 지난달 구성됐다.
전자주민카드는 신용카드 크기의 플라스틱 카드에 반도체칩을 내장해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국민연금증서 △주민등록등초본 △인감 △지문 등 7개분야 40여개 항목의 개인정보를 수록할 예정이다.
정부는 전자카드 시행으로 △각종 민원서류제출이나 신분확인이 손쉽게 이뤄져 부동산거래 금융거래 등의 실생활이 편리해지며 △각종 증명 발급건수가 줄어 한해 1조원의 경비를 절감하고 △주민등록증 위변조에 따른 은행대출 및 토지사기 범죄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대위측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개인 정보유출에 따른 피해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존파」사건과 「이한영씨 피살사건」에서 보듯이 지금도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있으며 전자주민카드 제도 아래서는 개인의 전체 정보가 빠져나갈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통합적인 전자주민카드보다는 현재의 주민등록증을 비롯한 신분증명제도를 간소화하고 불필요하게 신원확인 서류를 첨부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개인이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경우 △장애인 문맹인 정신질환자에 대한 카드발급 등은 보완해야 할 과제라고 인정하고 있다. 해커침입에 따른 전산망파괴 및 정보유출과 안기부를 비롯한 관계기관의 정보독점 우려 등도 숙제로 남아있다.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등도 통합카드신분증제도를 계획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 찬성론
내무부 김돈기 주민과장
『전자주민카드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등 여러 신분증을 하나로 통합해 편리하게 이용토록 하자는 것으로 국민감시나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은 없습니다』
전자주민카드 실무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내무부 金燉起(김돈기)주민과장은 주민카드는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전자독재」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주민카드는 주민등록증 외에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국민연금증서 주민등록등초본 인감 지문 등 7가지 내용을 신용카드 크기에 담는다』며 『내장된 반도체칩은 한글 4천자 정도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새 카드는 보안장치가 철저하며 개인별 비밀번호가 있어 잃어버려도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으므로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동사무소 경찰 병원도 해당 업무와 관련된 내용만을 판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감시 등에 악용될 소지는 정말 없을까. 『보안카드를 가진 담당자만이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또 정보를 열람한 사람의 인적사항 내용 시간이 자동적으로 기록되므로 불법유출과 악용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또 전자카드를 잃어버려도 동사무소에 신고하면 임시 증명서를 즉시 발급하며 주민카드는 2,3일내에 다시 발급하므로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상근 기자〉
▼ 반대론
제주대책위 최병모 변호사
崔炳模(최병모·48·변호사)는 「통합전자주민카드 시행반대와 프라이버시권보호를 위한 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라는 긴 직함을 갖고 있다.
―전자주민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가 추진중인 전자주민카드는 「인간 바코드」나 마찬가지다. 헌법이 정한 사생활 보장에도 어긋난다』
―정부는 오히려 전자주민카드가 실생활에 이득이라고 주장한다.
『주민등록증에 순치돼 정부의 그런 주장에 현혹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현재의 주민불편은 불필요하게 신분확인을 요구하는 관행 때문에 생긴 것이지 전자주민카드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비밀번호 부여로 개인정보유출을 막는다고 하는데….
『전자주민카드의 보안장치는 이를 깨뜨릴 수 있는 자에게는 무의미하다. 관련기관에서 업무 외의 정보공유를 전산망을 통해 막는다고 하지만 개인정보를 통합하는 발급센터에서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갈 가능성이 높다』
―전자주민카드를 반대한다면 대안은….
『신원확인 절차는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의 주민등록증 제도를 개선해 기재사항을 대폭 줄여야 한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우선 주민과 도 시 군 의회의원 등을 대상으로 전자주민카드의 허상을 알리고 전국 규모의 발급거부운동을 펴겠다』
〈제주〓임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