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학연 지연, 이도저도 아니면 「안면」으로 촘촘히 엮어진 기성문단. 제도와 「패거리」의 벽에 좌절한 「비주류」는 사이버 공간을 찾는다. 사이버 문학. 「닫힌 문단」을 거부하고 「열린 글마당」을 지향한다. 무기는 실험성과 도전정신. ID와 글만 있으면 누구든 표현할 권리를 얻는다. 「작가X 프로그램」. 지금 PC통신 한 귀퉁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펼쳐지는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다. 익명의 작가가 PC통신에 작품을 띄운다. 독자는 글쓴 이가 「거장」인지, 「애송이」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품평회를 갖는다. 편견이나 선입관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찬사 혹평이 난무하고, 슬그머니 나타난 작가는 예리한 안목에 고마워하다가 불쑥 흥분해 목청을 높인다. 사이버 공간 저 너머에 꼭꼭 숨은 작가의 정체를 밝혀내는 재미가 덤이다. 사이버 문학잡지인 계간 「버전업」이 지난해 가을부터 석달에 한번꼴로 이 색다른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장태일과 하재봉이 소설을, 마광수가 시를 내놓고 기꺼이 비평 도마에 올랐다. 지금은 네번째 「작가 X」가 시 4편을 매개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압권은 역시 마광수. 「…어느날 그녀는 젖가슴 언저리에 피아노 건반을 그렸어/…/그래서 나는 열심히 피아노를 쳤지…」. 「피아노」라는 제목의 「야한 시」가 오르자 독자들은 이름모를 시인의 정신세계 탐구에 열을 올렸다. 『아주 병약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고 그 콤플렉스를 이겨내는 노력을 하지 못한채 시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이 아닐까』 『비정상적 성에 탐닉하며 유교문화 군대문화에 찌든 한국사회를 조롱할 수 있는 작가는 단 두명뿐. 마광수와 장정일…틀림없이 마광수다』 시인은 「아주 재미있다」며 짤막한 메시지를 띄웠다. 『내 작품에 대한 반응을 보고 슬프고도 기뻤고, 쓸쓸하면서도 마조히스틱한 쾌감이 왔다』 「버전업」의 전사섭 편집위원은 『정보화 시대 글쓰기와 읽기의 전형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토론마당 제공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실제 참여자는 20명 안팎의 소수로 제한된 실정. 작품 자체가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데다 프로급 논객들의 수준에 주눅든 탓도 있어 보인다. 주최측은 앞으로 사이버 문학이 가야할 길이 멀다는 암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PC통신 하이텔로 들어가 「go sg86」을 치면 「버전업」 게시판과 만날 수 있다. 〈박원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