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반군의 수도공략이 가까워지고 32년간 철권통치를 해왔던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이 사실상 망명길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로랑 카빌라가 이끈 투치족 반군의 무장봉기로 시작된 자이르사태는 7개월만에 진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내전을 시작한 반군은 현재 주요 도시와 광산지대를 포함, 국토의 4분의 3을 장악했으며 최근에는 킨샤사 동쪽 2백㎞ 지점인 전략요충지 켄지를 점령, 수도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정부군에 불리해지고 있는 가운데 모부투대통령은 7일부터 사흘간 가봉을 방문할 예정인데 서방 외교 소식통들은 그의 외유가 망명을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이르 국영 라디오는 이날 모부투가 가봉에서 토고 콩고 카메룬 등 중부아프리카 지도자들과 회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으나 관측통들은 그가 가봉에서 프랑스로 망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도 6일 자이르 정부에 대해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위한 협상을 조속히 재개토록 거듭 촉구, 사실상 모부투를 포기했다. 자이르 내전은 △투치족과 후투족의 종족분쟁 △반독재 투쟁 △외세의 개입 등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지난 65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모부투가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은 친서방노선을 채택, 미국 프랑스 등의 지원을 등에 업었기 때문. 그러나 그는 도를 넘은 독재와 부패로 서방의 지지를 잃었다.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쏟아부어 그를 지탱해줬던 미국이 94년 원조를 중단하면서 모부투의 몰락은 예고됐다. 그러나 반군의 수도 함락으로 자이르 사태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반군 지도자 카빌라의 집권능력이 미지수인데다 르완다 난민에 대한 잔학행위로 국제사회의 평가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르완다 우간다 부룬디 탄자니아 등 중앙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가 관련돼 있는 투치족과 후투족의 종족갈등도 여전히 남는다. 아프리카 대륙을 친미정권 일색으로 만드려는 미국과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국의 다툼도 새로운 숙제로 등장했다. 〈고진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