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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시간으로 승부하자

입력 | 1997-05-08 20:07:00


시간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보자. 먼 옛날 원시시대에는 해가 뜨면 아침이고 해가 지면 밤이라는 두가지 시간개념만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농경사회 초기에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활 패턴이 정착되면서 하루 세끼 밥 먹는 아침 점심 저녁이 사람들이 느끼는 시간의 개념이 되었다. 그러다가 자급자족에서 벗어나 교역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하루를 12등분한 십이지(十二支)라는 좀 더 세분화된 시간개념으로 발전했다. 지금도 사주를 이야기할 때면 두 시간 단위인 자시 축시 등을 사용하고 있다. ▼ 「나노초」를 다투는 시대 ▼ 산업사회를 맞이하여 공산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교역의 범위가 넓어지고 빈도도 높아지면서 현재와 같은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개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보화시대가 다가오면서 시 분 초의 단위는 그대로이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 필요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기회를 잃고 마는 시대가 되었다. 경영컨설팅 법률자문은 시단단위로 가격이 매겨지고 증권거래 선물거래는 찰나에 가격이 바뀐다. 시간의 가치가 극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며칠에 걸쳐 해야 할 정보처리를 1초 안에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초단위의 시간개념도 의미가 없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이미 컴퓨터의 성능을 비교할 때는 10억분의 1초인 나노(nano)초를 다투는 시대가전개되고있지않은가. 그러나 한때 우리 사회에는 코리안타임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시간가치의 개념이 희박하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은 한번 놓쳐버리면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자원이다.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시간도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내시간이귀중한만큼 남의 시간도 천금같이 아껴주어야 한다. 이같은 시간의 중요성은 기업경영에도 적용된다. 과거의 기업경쟁이 가격과 품질의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시간경쟁력이 승부를 좌우할 것이다. 즉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시간 한 단위가 갖는 가치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바를 누구보다도 빨리 만족시켜주는 쪽이 경쟁우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서울∼부산간 기차요금은 비행기 요금보다 저렴하지만 도쿄∼오사카간 신칸센 요금은 같은 구간의 비행기 요금과 비슷하다. 그 이유는 시내에서 공항까지 가고 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신칸센을 타고 가는 것이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 국가경쟁력 시간이 좌우 ▼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고객의 시간낭비에 따른 비용을 얼마나 줄여주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국가 행정서비스의 스피드 경쟁력도 제고되어야 한다. 복잡한 업무절차와 규제는 국가 전체의 시스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사회간접자본 및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물류비용과 시간적 손실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가 앞장서서 민간기업과 협력하여 교통 정보 통신인프라 구축에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