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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공동체를 위하여]공무원「公僕의식」 아쉽다

입력 | 1997-05-15 08:06:00


『일본의 현청(도청)에 들렀을 때 과장급이 창구에서 민원인 안내를 맡고 있는 것을 보고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건복지부의 한 서기관은 『내 자신이 공무원이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라고 고백했다. 90만명의 중앙 지방공무원에다 정부투자기관등의 준공무원까지 합하면 1백25만명. 쓸 수 있는 자금이 올해의 경우 정부예산 공기업예산을 더해 1백60조원. 「부패척결」을 내세운 문민정부는 출범초기 재산등록 및 공개를 통해 고위권력자들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등 거대한 관료집단에 칼을 댔다. 그러나 공무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아직도 부정적인 쪽에 기울어져 있다. 권위주의 정권때의 공무원이 국민에게 군림하는 집단이었다면 문민시대의 공무원상은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바뀐 점이 다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신보다는 보신을, 업무추진보다는 책임회피를 먼저 생각하는 현상이 낳은 희화적 표현이다. 차기 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어느 쪽에 줄을 댈것인지눈치보기에 급급한 「복지안동(伏地眼動)」현상이 이야기되기도 한다. 서양에선공무원을공복(公僕·Civil Servant)이라 부른다. 우리 헌법도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눈에 비친 공무원이나 공무원들 스스로 생각하는 공무원의 모습은 「봉사자」와는 거리가 멀다. 개혁과 사정(司正)을 그렇게도 외쳐댄 이 정권하의 공무원들도 직무유기 직권남용 수뢰 알선수뢰 뇌물공여 등 형법 7장의 공무원 직무죄 항목을 골고루 답습하고 있다. 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가 지난해 전국의 5백개 기업체 임원 및 부장 과장 등 6백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1.5%가 「지난 1년동안 공무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일이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66.6%는 공무원이 부당한 일을 무마하거나 묵인해주고 대가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문민정부의 개혁과 사정조치에도 불구, 민원담당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적 업무처리와 금품수수 등 부조리는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93년부터 2년동안 일본 이바라키대에서 지방행정을 강의하면서 韓日(한일)행정을 비교연구해온 충북대 姜瑩基(강형기)교수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서비스업종 종사자가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비용의식 납기의식 경쟁의식 위기의식 등 네가지 의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경영실적이 나쁘면 해고된다는 위기감이 없을 뿐 아니라 정해진 시간내에 최소의 비용을 들여 업무를 처리한다는 생산성과 효율성 개념도 전무하다는 것. 우리 정부는 「도산없는 부실기업」과 마찬가지 상태라는게 그의 진단이다. 『전통적인 관료제 아래에서는 공무원들은 그저 상사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고객인 국민 위주로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명제입니다. 교통경찰은 자신들이 왜 범칙금 딱지를 발부하는지를 생각하고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왜 이 서류가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환경부 모국장) 그러나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공서는 공공서비스를 판매하는 회사」라는 발상으로 과감히 전환, 민원행정분야의 개혁에 성공한 사례를 민선자치단체장 취임후의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산진구청과 울산 남구청의 혈압 비만도측정 등 무료 건강진단서비스, 충남 보령시의 시정기동순찰반, 강원 동해시의 민원 기동처리반, 충북 진천군의 호출민원처리제, 민원처리가 늦어져 불편을 겪었거나 불이익을 당한 시민에게 전화카드로 보상하는 충남도와 광주광역시 수원시청의 민원불편초래보상제, 이동진료차를 이용한 충북 음성군의 산간벽지 주민을 위한 무료진료활동, 시장공관을 어린이집과 시민휴식공간으로 만든 경남 울산시, 민원서류에 담당공무원의 이름과 소속 부서를 명시하는 민원행정실명제…. 지방자치단체들이 2년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에 펼친 시책들에서 공복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많은 시민들의 심정일 것이다. 성공적인 국가경영은 공무원과 국민이 힘을 합쳐 이뤄내는 오케스트라임을 일본의 한 지방공무원의 말에서 실감하게 된다. 『공무원은 법과 예산을 무기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꿈과 미래, 불만과 욕구라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행정도 있는 겁니다』 〈김세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