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퇴근 후에 누구네 집에 가볼까」. 서울 관악구 신림10동 보건복지사무소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金永學(김영학·34)씨의 하루는 그의 재산목록 1호인 수첩을 챙기는 일로 시작된다. 그의 수첩에는 그가 책임져야 할 생활보호대상자 1백20가구, 편부 편모가정 13가구의 인적사항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의 민원을 처리해 주고 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학비 생활비 자립자금 등을 지원하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직무지만 그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90년 사회복지사 3기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이래 초상을 치른 것만 여섯 번, 문병간 횟수는 헤아릴 수도 없다. 혼자 사는 노인이 유족도 없이 사망하면 상주가 되었고 몸져 눕게 되면 병원에 입원시켜 보호자 역할을 대신했다. 편부 편모가정의 어린이나 소년소녀가장을 후원자와 맺어주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말기암환자나 폐질환자 치매노인 등이 있는 방에는 다들 가지않으려고 해요』 김씨는 직접 목욕도 시키고 이부자리도 갈아주는 시범을 보여가며 뒷걸음질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소매를 걷어붙이도록 이끌기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7년 남짓한 공무원생활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어려서 고무줄놀이를 하다 넘어져 하반신마비가 된 장애인 처녀에게 1천여만원의 자립자금을 지원해 경기 남양주시에 피아노학원을 열게 했을 때였다. 『그동안 사회복지사 동기 50명중 20명이 떠났습니다. 별정직이라 봉급인상도 승진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월급이나 좀 올랐으면 좋겠고 현재 전국 다섯군데에서 시범운영되고 있는 보건복지사무소가 많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한 공복의 소망은 소박했다. 〈김세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