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K대학 일어일문학과에 다니는 金正三(김정삼·서울 은평구 구산동)씨는 마음이 불안했다. 나이는 이미 26세. 제대도 했다. 2남1녀의 맏이. 언제까지 부모에게 손벌릴 수 없는 노릇인데…. 방학이면 막노동을 했다. 일당 4만원. 친구와 맥주 한잔 마시고 노래방 가면 주머니는 어느새 비었다. 지난해 12월초. 방학이 왔다. 여느 때처럼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인력개발원을 찾았다. 뭐 좋은 자리 없을까. 사무실에 앉아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우리 일하나 해볼까. 쉽게 돈벌 수 있는데…』 申宰一(신재일·45·은평구 불광동)이라는 사람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얼굴도 점잖아 보였다. 호출번호를 알려준 뒤 헤어졌다. 사흘뒤인 4일 오후6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지하철역에서 신씨를 만났다. 갑자기 신씨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보였다. 과도였다.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옆에서 감시만 해』 뭔가 나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신씨는 사람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곧장 인근의 한 치과로 들어갔다. 오후 7시. 환자와 의사가 떠나고 간호사 3명만이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붕대와 비닐끈으로 그들을 묶었다. 현금카드도 빼앗았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김씨는 그러나 돌변한 신씨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간호사를 성폭행하는 신씨. 「이게 아닌데…」.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하지 못했다. 두툼한 1만원짜리 지폐가 분명 손끝에 느껴졌다. 「한번만 더」. 어느새 김씨의 치과털이는 열번에 이르렀다. 부처님 오신날인 5월14일. 김씨의 호출기에 신씨의 음성녹음이 찍혔다. 『동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자』 오후 2시. 커피숍 근처에 서있던 김씨에게 낯선 사람들이 다가왔다. 『당신이 김정삼이지』 형사였다. 김씨의 가방에서 과도2개, 면장갑2개, 붕대와 파스가 발견됐다. 6개월간 서울시내 치과의원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들 2인조의 강도행각은 이렇게 끝났다. 〈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