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맞춤법은 소리글자인 한글을 뜻글자로 쓰기 위한 규칙체계다. 뜻이 첫째요, 소리는 둘째다. 그러기에 우리는 「몸깝」 「꼰닙」으로 소리나는데도 「몸값」 「꽃잎」으로 각각 표기하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부가 내놓은 로마자표기법 개정시안은 한글맞춤법의 원칙을 그대로 살려 놓았다. 따라서 「몸값」 「꽃잎」이 각각 「몸갑스」 「꼬치프」로 발음되는 등 불합리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뜻의 전달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한다. 현행 표기법에 들어 있는 어깨점과 반달표에는 사실상 소리를 구별하는효과가없다.또 언어처리의 기계화에도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는 점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도 공청회에서는 문체부의 개정시안에 반대하는 발언들이 적지 않았다. 이미 뿌리내린 것이니 손대면 안된다며 개정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도 많다. 또 고칠 때 고치더라도 현행 표기법의 정신은 그대로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행 표기법의 원칙은 뜻은 젖혀놓고 소리만 적는데 있다. 그러면서 소리마저 지나치게 일그러뜨렸다. 외국인의 귀에 맞춰 만들었기에 예사소리와 거센소리도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데 유성음과 무성음은 뚜렷이 구별된다. 우리의 소리체계를 가볍게 보거나 무시한 결과밖에 안된다. 무리가 있지만 고치지 말자는 주장은 로마자표기법이 외국 관광객을 위해 도로표지판에나 사용되는 정도에 그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여권에는 이름이 반드시 로마자로 표기돼야 하고 세계의 수많은 데이터베이스에 로마자로 표기된 한국어 자료가 들어가지 않는가. 우리의 표기법은 현재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무정부 상태에 있다. 자기 이름을 적으면서 「석만」을 「성만」으로, 「창근」을 「장군」으로 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모두가 멋대로 표기법을 만들어 쓰고 있다. 또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예컨대 같은 「문」씨라 해도 그 나라의 표기법에 따라 「MOON」도 되고 「MUN」도 되고 「MOUNE」도 되는 실정이다. 과연 일제 식민지 시대의 창씨개명과 뭐가 다른가. 한글맞춤법 원칙에 따른 새 로마자표기법 제정에 반대하는 주장은 이같은 무정부 상태를 그대로 두자는 말밖에 안된다. 물론 문체부의 개정시안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확고한 원칙은 서 있으니 사소한 문제들은 드러나는대로 해결하면 된다. 뜻만 있다면 모두가 완벽한 표기법을 만드는 일에 소매를 걷고 달려들어야 한다. 황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