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어디를 가나 우리나라의 광릉수목원을 연상케 하는 울창한 숲이 가까이 있다. 그런 산림에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고 산악자전거타기 같은 운동도 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가 있는 자르브뤼켄은 전통적인 중공업지역이지만 의외로 푸른 자연환경과 조화된 도시기반을 갖추고 있다. ▼ "사슴 조심" 도로표지판 ▼ 이곳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살고 즐기지만 바로 그런 녹색환경 때문에 때때로 곤란을 겪기도 한다. 독일의 도로표지판 중에는 사슴이 그려진 것이 있는데 이는 야생동물이 자주 튀어나오니 조심하라는 의미다. 실제로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과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사슴을 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보험처리가 되며 산림관리인에게도 보고해야 한다.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아우토반(고속도로)에서 새 토끼 청설모 등 작은 동물들이 차에 치어 죽은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장거리 주행을 하고 나면 자동차에 충돌해 죽은 벌레들의 잔해와 새의 오물 등으로 앞창과 차체가 엉망이 되기 일쑤다. 동물이 자동차고장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따뜻한 것을 좋아하고 플라스틱류를 잘 먹기도 하는 마더(Marder·족제비처럼 생긴 작은 동물)는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아직 식지 않은 엔진 위에 올라 앉아서는 냉각수케이블이나 전선케이블을 뜯어먹어 고장을 내곤 한다. 이를 경험하는 사람들로서는 당황스런 일이겠지만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비슷하지만 특히 독일은 전통적으로 기계 중화학분야 등에 강한 산업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어느 나라보다 먼저 심각하게 인식,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이에 적합한 시설투자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구동독 지역도 90년 통일 당시에는 환경이 몹시 피폐했다. 약 40%는 생태계 균형이 깨진 상태였다. 그러나 통일이후 엄격한 서독환경법을 적용하고 독일연방정부도 환경보존에 우선적으로 투자, 동독지역도 급속히 개선돼 가고 있다. 90년부터 94년까지 독일정부의 환경보조금은 3백98억마르크(약 20조원)에 달한다. 이런 막대한 투자에 힘입어 구동독지역 엘베강의 수질은 수은이 86%나 감소하는 등 큰 효과를 얻었다. 독일은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에서 미국 일본 등에 선두자리를 내주었으나 환경관련분야에서는 아직도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21세기 성장시장인 환경설비분야에서 독일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은 환경연구 프로그램을 70년대 초반부터 정책적으로 강력히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 성장보다 환경 우선 ▼ 우리나라는 60년대 이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 물질적 풍족과 삶의 편의가 증대됐다. 그러나 각종 오염증가로 삶의 진정한 질(質)은 오히려 악화되는 모순을 경험했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있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의의 평가보고서에서 현재도 환경의 질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은 미흡한 것으로 지적됐다. 폐기물의 예를 들자면 현재 OECD 28개 회원국중 유일하게 산업폐기물 발생량이 국내총생산(GDP)증가량을 앞지르는 국가가 우리나라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대만에서 발생한 핵폐기물까지도 수입하려 하고 있다. 남북한 모두에 녹색환경이 구축되고 그 속에서 굶주리지도 않지만 각종 오염에 시달리지도 않으며 높은 삶의 질을 구가하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나는 늘 희망한다. 그러나 선진환경은 정치가의 선언이나 구호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보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국민의 앞선 환경의식이 뒷받침돼야 이뤄지는 것이다. 이춘식(KIST 유럽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