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지구촌 인성교육현장 20]「자기 잘못」인정하기

입력 | 1997-05-19 08:08:00


스위스 취리히의 알트베그 초등학교 4학년 마르셀 코바 선생님반 어린이들에게 매주 월요일 첫시간은 회의시간이다. 주제는 「모두가 만족하는 교실환경 만들기」. 지난주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보고 개선해야 할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다. 주로 코바선생님이 회의를 이끌어간다. 『지난 일주일동안 배운 내용중에 어려운 것은 없었니?』 『수영시간이 싫었어요』 『왜?』 『재미없어요』 『그래도 건강을 위해서 해야하는 거야. 수영선생님한테 너희들이 수업 진행방식에 대해 불만이 있더라고 전달해야겠구나』 『제 짝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짝을 바꾸든가 다른 팀에 갈 수있게 해주세요』 『넌 팀을 바꿔도 늘 불평이잖니. 다른 아이 탓만 하지말고 네 태도에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항상 네가 옳은 것은 아니거든. 원하면 너같은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빌려줄게』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자면 매사가 순조롭게 풀릴 수만은 없다. 고만고만한 어린이들이 모여 생활하는 학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코바선생님반 아이들은 학급회의 시간에 대화를 통해 이런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나간다. 수업 진행방식이 못마땅하다는 불만에서 시작해 『공놀이 할 때 여학생에게 기회가 너무 적게 돌아온다』 『휴식시간이 끝난뒤 계단을 이용할 때는 높은 층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먼저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 『짝을 자주 바꿨으면 좋겠다』는 등 별별 얘기가 다 나온다. 누구누구의 행동은 참을 수 없다는 등의 친구 개인에 대한 불만사항도 회의의 단골메뉴. 일단 문제학생으로 지적된 아이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충분히 갖는다. 그리고 열띤 토론을 통해 잘잘못을 가린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에 대한 친구들의 지적을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프랑스 파리의 초등학교에서는 반성할 줄 아는지 여부도 채점의 대상이다. 매학기마다 성적표에는 준법성이나 자주성과 함께 「자기잘못을 고치고 인정하는 능력」에 대한 평가가 적혀 나온다. 친구나 교사의 주의를 받았는데도 정당한 이유없이 고치려 들지 않으면 「자신의 단점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으려 하지 않음」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고 반성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함」등의 호된 평가를 받게 된다. 이 학교 데포세 교장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완벽할 수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실수를 했을 때 이를 인정하고 반성하려는 태도』라고 강조했다. 취리히에 사는 야나 셉스부인은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직업여성. 바쁜 와중에도 초등학생인 마티나(13)와 모니카(11) 두 딸이 잠자리에 들기 전 반드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최근에는 큰딸 마티나가 『우리 팀에 속한 유고에서 온 아이가 늘 말썽을 부려 팀 성적이 좋지않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셉스부인은 『그 아이가 싫으면 억지로 좋아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같은 팀인 이상 함께 협력해야 해. 너희들이 그 아이를 따돌린 적은 없는지 생각해보렴』이라고 조언해줬다. 파리 근교의 뷔퐁가에 사는 다미앙은 학교에서 돌아와 꼭 일기를 쓴다. 처음엔 『프랑스어 성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엄마의 권유로 시작했다. 덕분에 어휘와 철자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다미앙은 『이젠 성적보다 일기를 쓰다보면 신기하게도 기분 나빴던 일을 잊게 돼 좋다』고 말했다. 〈취리히·파리〓이진영기자〉 ▼ 스위스 제네바 초등학교에선… ▼ 스위스 제네바의 콩타민 초등학교 졸업반인 마르크 폴의 학급에는 비밀공책이 있다. 이른바 「불평노트」. 어린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느낀 불만사항을 돌아가면서 적는 공동일기책이다. 이 내용은 교실 밖으로 새나가는 일이 없다. 학부모들에게도 비밀은 철저히 지켜진다. 다만 내용을 쓴 뒤에는 반드시 자기 이름을 적게 돼있다. 무책임하게 남을 모함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불평노트 제2권의 첫장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친구가 책을 훔쳤다」. 「여학생들이 날 못살게 군다」. 「선생님이 날 예뻐하지 않는다」. 「자유시간을 좀더 많이 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학급회의때 공책에 적힌 내용에 대해 교사와 허물없는 토론을 벌인다. 『책을 훔친 것이 아니라 빌려간 것이다』 『마르크가 좋아서 장난친 것이지 마르크를 놀릴 생각은 없었다』 『선생님은 누구만 좋아한다든가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필립에게도 앞으로는 신경을 더욱 쓰겠다』는 등 변론의 기회도 주어진다. 학생들은 오해가 있었던 부분은 풀고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도 한다. 취리히의 프레이스타라세 초등학교 맥세이 선생님반에서는 「신문고」제도를 운영한다. 「불평노트」와 다른 점은 투고내용이 무기명이라는 것.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 점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부담없이 적어 상자안에 넣는 것이다. 맥세이 교사는 사안별로 문제가 되는 학생을 불러 조용히 이야기하거나 학급회의때 안건으로 올린다. 〈제네바·취리히〓이진영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외국생활을 하며 직접 경험한 생생한 인성교육 사례를 알려주시면 지면에 반영하겠습니다. 전화:02―361―0275∼9 팩스:02―361―0424∼5 주소: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139 동아일보사 사회1부 교육팀(12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