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품에 까닭을 달기위해 형체를 만드는 따위의 일을 무척 싫어한다. 그저 담담한 마음에서 화필을 들어 짜임새를 찾아 헤매느라면 세차고 기운있는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추상미술의 본령을 집요하게 추구했던 서양화가 고 이상욱(李相昱·1923∼88)화백이 생전에 자주 하던 말이다. 원색계열의 강한 색채와 약동하는 선묘, 활달한 운필로 여백을 가르는 일필휘지의 화면…. 그의 작품세계를 정리하는 「이상욱회고전」이 21일부터 6월8일까지 서울 동아일보 광화문사옥 일민미술관(02―721―7772)에서 열린다. 한국대표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꾸준히 정리 조명해온 동아일보사와 일민미술관의 21번째기획. 생애에 걸친 그의 작품 1백여점이 시대별로 전시된다. 1층전시실은 유화를 중심으로 한 대작들이, 2층엔 소품과 판화 드로잉들이 전시된다. 추상미술에의 열정과 탐구로 생애를 바친 그는 점선 등 조형의 기본요소를 가지고 생명력있는 화면을 창출하고자 했다. 빠른 붓놀림에 의해 생성된 화면의 역동감은 시간 공간을 넘어서는 힘을 느끼게 한다. 북한(함남함흥)출신인 그의 작품에는 두고온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망향」 「독백」 「흔적」 등 작품제목에도 이것이 나타난다. 열두살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던 이화백은 일본 가와바타(川端)회화연구소에서 그림수업을 받고 돌아온후 단국대를 졸업했으며 대신중고미술교사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화단에 입문하게 된다. 그는 제1회 국전(49년)에서 구상계열의 양화로 입선한 이후 지난 88년 작고할때까지 줄곧 양화 판화작업을 통해 현대 추상미술을 이끌어왔다. 미술교육 주요미술제 심사위원 등 순수그림작업이외의 미술활동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특히 한국판화협회와 현대판화협회를 창립하는 등 우리나라 판화운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왔다. 타계1년전인 87년 그는 암투병중이던 병실을 빠져나와 회원전을 준비하고 가누기 힘든 몸을 이끌고 개인전을 치르는 등 놀라운 집념을 보여주었다. 70년대 중후반 등 미술시장이 일대호황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화백은 이런 문제에 전혀 무관심, 평생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해왔다. 미망인 권정희여사(75)는 『그림 파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다보니 이처럼 많은 작품이 남아 있었고 이번에 전시회도 가능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아일보사와 일민미술관은 이번 전시회에 맞춰 이화백의 전작품을 수록한 카탈로그를 발행하며 판화2점을 오리지널 아트포스터로 제작, 필요할 경우 표구가 가능하도록 했다. 작품을 이용한 그림엽서도 만들었다. 〈송영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