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재미」만 팔리는 게 아니다. 18일 저녁 방영한 EBS 「터놓고 말해요」의 「우리도 가장이에요」편. 그저그런 소년소녀가장 프로라는 생각이 앞서면서도 눈길을 떼기 어려웠다. 토크쇼 형식인 이 프로는 우선 감동을 조작하거나 충격을 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도식적인 동정을 불러일으키기 보다 이들의 입을 통해 생활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소개, 새로운 공감대를 열어 보였다. 진행자의 잦은 한숨만 제외한다면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어설픈 고정관념을 바로잡아 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이날 출연진은 정창흠 지영 남매를 비롯해 김정현양 김정훈군 등. 창흠 남매는 뇌종양으로 4년째 거동못하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고 김정현양은 어머니 언니 오빠가 가출한 뒤 장애인 아버지와, 김정훈군은 불구인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스스로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부각시키지 않았다. 과장이나 여과없이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면서도 10대다운 웃음을 잃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어려움을 드러내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요리사 기자 등 꿈을 말할 때는 비바람 속에 강해지는 나무들을 떠올리게 했다. 생계비도 큰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정창흠군의 경우 학업 준비 등에 필요한 돈이 한달에 1만원이었고 김정훈군은 정부보조비 15만여원으로 「어려움없이」 살고 있었다. 김정현양은 지난해 소년소녀가장돕기 수기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뒤 후원금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우리도 …」는 이같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소년소녀가장들의 어른스러움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불우하니까 도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미래를 가진 이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게 했다.특히 주말 저녁은 TV방송사들이 10대의 시선을 잡기 위해 야단법석을 떤다. 이같은 시간대에 편성된 「우리도 …」를 보고 돕겠다는 문의 전화(02―5262―083)가 걸려온다면 그것은 곧 얄팍한 재미거나 시청률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일 터이다. 〈허 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