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하자있는 새 차」를 레몬이라 부른다. 사전에는 모든 품목을 망라한 불량품으로 규정해 놓았지만 주로 차량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비자 보호제도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구입한 제품이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만으로도 소비자가 30일 이내에 교환이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처럼 단가가 높고 새 것으로 교환이 곤란한 제품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반환이나 교환을 엄격히 제한한다. 미국생활 초기에는 이에 익숙하지 못해 결함있는 물건조차 당당하게 교환을 요구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8개월이나 사용한 자동차를 반환하고 구입비용 전액을 돌려받는 「행운」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레몬」이라는 단어에 대한 호기심 덕분이다. 1주일이 멀다하고 수리점을 들락거리던 고물차가 길 한복판에 멈춰서버린 지난해 2월 어느 날. 나는 그 길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자동차판매점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내가 「봉」임을 알아본 판매원으로부터 30분간 일방적인 설교를 들은 뒤 신용카드 한도액까지 동원해 새 차를 구입했다. 그러나 한달도 못 채우고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동변속기의 작동이 불량이더니 날이 갈수록 결함이 추가되는 것이 아닌가. 판매점에 항의한 뒤 3개월 동안 수리점 신세지기를 수차례. 그래도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던 중 「레몬법(자동차보증제 강화법)」에 관한 책자를 집어들게 됐다. 「자동차와 관련된 내용인데 왜 레몬법이라고 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전체 내용을 살펴봤다. 이 법은 중요 부분에 결함이 있고 이 결함의 수리를 위해 일정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고치지 못한 새 차를 레몬이라 규정해 놓았고 자동차 판매상은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다른 차로 바꿔주거나 구입금액을 반환하도록 하고 있었다. 새 차가 레몬이라는 확신이 서자 나는 증거서류를 수집한 다음 판매상에게 정식으로 반환을 요구했다. 몇차례 실랑이가 있었지만 결국 나는 구입비용 전액을 돌려받았다. 그 동안의 시간적 손해는 미국의 소비자보호제도의 진면목을 실감나게 체험했다는 보람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었다. 장진(마이애미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