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보내면 정말 북한에 있는 내 누이 가족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겁니까』 『북에 남아있는 아내에게 쌀을 보냈다가 아내가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요』 남북적십자사가 북한 특정지역의 특정인을 지정해 식량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식량 지정기탁제」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6일 북한에 가족을 둔 실향민들은 설렘과 기대, 온갖 궁금함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날 대한적십자사와 언론사, 이북5도청, 각 도민회 등에는 구체적인 합의내용을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지난해말 북한의 누이동생 가족에게 전해달라고 중국 연변의 동포에게 쌀 살 돈을 비밀리에 전해주고 왔다는 실향민 이모씨(65·서울 서대문구 연희동)는 『그때 이후 누이동생이 그 쌀을 받았는지, 받아서 몰래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붙잡히진 않았는지 매일 밤잠을 설쳤다』며 『이제 합법적으로 식량을 보내줄 길이 열린다면 내 모든 재산을 털어서라도 동생가족을 돕고 싶다』고 울먹였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실향민 이기순씨(62·여·서울 송파구 문정동)는 『식량 전달방법을 투명하게 잘 정비해 정말로 내 가족에게 쌀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감격적인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며 북한에 남아있는 부모와 동생의 주소를 수소문해 달라고 호소했다. 장정렬평북지사(64)는 『식량 지정기탁이 이뤄지기 위해선 먼저 남북적십자사간에 친지 생사여부와 주소확인을 위한 상호방문이 있어야 한다』며 『주소가 확인되지 않아도 고향 근처까지만이라도 식량을 보낼 수 있다면 대부분의 실향민들이 기꺼이 식량을 보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지정기탁이 실제로 가능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과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3남3녀중 혼자만 월남했다는 한 전직 공무원은 『북한 주민들이 굶고 있다는 언론 보도만 들어도 가족이 생각나 피눈물이 나지만 만약 우리 가족을 지정해 식량을 보내면 반동분자 가족이라고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함남도민회장인 이인화씨(70)도 『우선은 식량 지원에 따르는 불이익이 전혀 없다는 게 남북당국간에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기홍·이현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