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업자 이모씨(45)는 차안에 검정색 싱글과 넥타이에 「한 여성」의 영정까지 상비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의 단속을 받을 경우 그는 세상을 다 산듯한 표정으로 『알아서 하시오, 암으로 앓던 집사람이 죽어 화장해 뼈를 뿌리고 오는 길인데 당신 같으면 술한잔 안할 수 있겠어…』라고 말한다. 몇차례 이 방법을 동원해 빠져나갔지만 꼬리가 길어 그는 올해초 면허취소를 당하고 말았다. 사업을 하는 50대 김모씨는 지난 4월말 음주운전중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을 지나다 단속경찰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내뺐다. 현장에서 1㎞가량 벗어난 김씨는 경찰이 바짝 뒤쫓아오자 영등포구청 부근의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이 김씨를 연행하려 하자 동네 주민들은 『에이, 한번 봐주지』라고 김씨를 응원했다. 경찰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김씨는 진열대에 있는 음료수 과자 빵을 닥치는대로 먹었다. 알코올농도를 낮춰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순찰차를 타고 경찰서에 도착한 김씨는 음주측정기에 입을 댔다. 음료수 과자 빵의 효험도 없이 면허취소 수치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한번 봐달라고 통사정했지만 거절당하자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한 김씨는 자신을 연행한 의경을 향해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에이 XX, 운전 안하면 될 것 아니야. 건방진 놈. 니가 몇살인데 어른한테 그렇게 뻣뻣해…』. 이에 비해 회사원 문모씨(34)는 정면돌파형. 음주를 극구 부인하다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수치가 나오면 감기약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그리고는 피를 뽑아보자고 말한다. 당당하면 봐줄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도 최근 면허를 취소당했다. 최근 외국에서는 심한 음주운전자를 살인예비죄로 처벌하기로 할만큼 음주운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국내에서 음주운전을 범죄로 받아들이는 운전자는 많지 않다. 식사 자리에서의 반주(飯酒)문화가 낯익어서인지 한잔 걸치고 차를 몰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경찰의 강력한 단속을 비웃듯 해마다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고있는 음주운전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이를 잘 말해준다. 지난해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2만5천7백64건이 발생, 9백79명이 숨지고 3만8천8백97명이 다쳤다. 발생건수와 사망자수가 95년에 비해 각각 45%, 42%씩 늘어났다. 지난 90년에 비하면 4년 사이 발생건수는 2.5배, 사망자수는 2배로 급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1∼3월 중 음주단속에 걸린 운전자는 5만5천1백3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6%나 늘었다. 아무리 경찰이 단속을 강화해도 꿈쩍않는 「강심장 배짱운전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최근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전에는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이 예상되면 자제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이제는 할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실제로 5월 21, 22일의 서울시내 일제단속에서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 또는 정지상태인 운전자 64명이 다시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 단속에 걸렸다. 39명은 음주운전으로 취소된 면허를 다시 취득하고 나서 음주운전을 한 경우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단속에 걸리면 『정말 재수없다』고 투덜대는게 보통이다. 반성하거나 미안해하는 대신 온갖 변명을 하거나 「기관에 근무한다」는 등 으름장을 놓고 「백」을 동원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여성음주운전자들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서대문경찰서의 李敏(이민·23)의경은 『여성운전자의 경우 창피함 때문인지 음주사실을 솔직히 털어놓고 현장을 빨리 벗어나려 한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고 차를 모는 안전불감증의 운전자 때문에 거리와 교통문화가 살벌해지고 있다. 경찰청 金載熙(김재희) 교통지도국장은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음주운전을 뿌리뽑을 수 없다』며 『음주운전자는 「가정파괴범」이라는 사회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상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