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최고사정기관인 대검찰청의 중앙수사부장이 경질되고 재수사까지 해야 했던 한보특혜대출 및 金賢哲(김현철)씨 비리사건은 검찰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될 것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켜준 획기적인 사건으로도 남을 것이다.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권력의 주문에 따라 정의에 어긋난 법집행을 하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1차 수사과정에서 존재의미를 위협받을 정도로 벼랑까지 몰렸었다. 검찰의 1차 수사 결과가 국민적인 비난에 직면한 것은 수사성과가 미미해서만은 아니었다. 검찰은 당시 현직 국회의원 4명과 현직장관 재벌총수를 한꺼번에 구속수감했다. 이는 검찰 역사상 단일사건으로서는 보기 드문 「전과」에 해당한다. ▼ “마피아총대로 만든 잣대” ▼ 그러나 검찰이 한보특혜대출비리사건의 배후(몸통)로 지목된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소환조사하기는커녕 『구체적인 범죄혐의가 없다』며 감싸고 돌자 국민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검찰은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수사에 착수한지 한 달도 채 안돼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했었다. 검찰은 결국 국민회의 의원들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현철씨를 「고소인」자격으로 소환했지만 고소내용만 조사하는데 그쳤다. 검찰 수사가 이렇게 핵심을 비켜가자 각종 시민 사회 종교단체 등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재수사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60대의 한 시민은 심지어 「마피아의 총대로 만든 잣대!」라는 제하의 신문광고를 통해 검찰을 격렬히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 시민은 『부정부패 비리를 수사할 때마다 검찰은 정의의 칼로 부정부패비리를 척결하기보다는 마피아의 총으로 오히려 부정을 은폐하고 옹호했다』며 검찰을 몰아붙였다. 검찰이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으면서 검찰내부에서는 자성론이 일기 시작했다. 일부 중견검사들은 『金起秀(김기수)검찰총장이 이같은 사태에 대한 최종책임을 져야 한다』며 김총장의 퇴진을 위한 서명을 은밀히 준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3월초 검찰이 이같은 집단항명 움직임을 포착, 내사에 들어가면서 이같은 움직임은 중단됐다. 검찰 스스로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사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권력의 주문에 따라 진실을 외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18사건에 대해 당초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린 것이나 盧泰愚(노태우)전대통령이 1백50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도 이를 은폐한 수서비리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도 徐錫宰(서석재)전총무처장관의 4천억원 비자금 발언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결국 3개월만에 朴啓東(박계동)전의원의 폭로로 재수사한 사건이었다.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가 극심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편중된 검찰 인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까지 전국 검찰을 지휘하는 검찰총장의 자리가 권력핵심과 같은 이른바 TK(대구 경북)와 PK(부산 경남)출신 인사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한 것은 이를 웅변으로 입증한다. 실제로 安又萬(안우만)전법무부장관이 물러나기 직전 PK인사들은 검찰사상 최초로 장관을 비롯하여 총장 서울지검장 대검중수부장 대검공안부장 등 5대 요직을 독차지했다. 제도적인 문제점도 적지 않다. 검찰청법상 상사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든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의무조항은 당연히 삭제돼야 한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지적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복종 의무외에 검사들에게 이같은 상명하복을 강요한 조항은 全斗煥(전두환)정권 때 삽입됐다. 또 법원이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든 재정신청제도의 대상을 유신정권은 모든 범죄에서 공무원의 직권남용으로 축소해 버렸다. ▼ 「드림팀」에 쏟아진 격려 ▼ 일본은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모여 기소의 타당성을 심사하는 기소심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보다는 무엇보다도 검찰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 검찰내외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검사들의 개인적인 출세주의가 이같은 「권력눈치보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1차 조사 뒤 대검 중수부장이 교체되면서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1백80도 달라진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에 쏟아지던 비난전화는 격려전화로 바뀌었다. 검찰 사상 50년만에 처음으로 수사팀에 격려성금이 들어오기도 했다. 문제는 제도보다는 검찰의 태도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청사경비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95년부터 상주하기 시작한 전경들은 여전히 서울지검과 대검청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고 있다. 검찰을 사랑하는 법조계 인사들과 국민은 검찰이 전경들에게 자신의 신변보호를 요청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다. 〈하종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