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동은 「국정표류」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물론 청와대 당국자들은 27일 대국민담화 발표결정 직후 『김대통령은 한번도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바 없다』며 『예민한 사안인만큼 심사숙고를 해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국민담화→고위당정회의 언급→입장표명 거부→대국민담화」로 이어진 과정은 「국정난맥상」의 결과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지배적 평가다. 김대통령이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장고(長考)」를 거듭했던 데는 △한보자금 수수의혹 등 「원죄(原罪)」 부분의 부담이 큰 데다 △비서실의 조정기능 부재 △공조직보다 「비선(秘線)조직」에 의존하는 스타일 △야당과의 대화채널 부재로 인해 「입장표명 후 야권반응에 자신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한마디로 정국현안에 대한 「종합 프로그램」을 마련할만한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대통령은 당초 여러 수석비서관들의 입장표명 건의에 구체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청와대 「외부」에서 『아들까지 구속된 마당에 또 입장표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자 한때 청와대 공조직의 건의보다 이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인 것 같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뿐만아니라 청와대 비서실내의 의견조율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대표가 지난 23일 주례보고 직후 「대선자금 공개불가」 방침을 「밀실담합」 식으로 결정해 발표해버린 것도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는 당정간 조율기능 부재의 결과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