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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박상희/저속한 대중가요 노래말

입력 | 1997-06-09 08:07:00


세상이 망하려면 먼저 말이 망한다고 한다. 지금 세상이 망하려는지 말이 너무 망해가고 있다. 한보청문회를 겪으면서 우리는 말이 얼마나 망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점은 말이 망해가는 곳이 정치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부문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말이 망해가고 있다. 조짐 정도가 아니라 공공연한 현상이 됐다. 더욱 충격스러운 점은 대중가요의 노래말까지 망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발표된 DJ덕의 「삐걱삐걱」이나 이소라의 「키스」에는 야유와 욕설이 거리낌없이 등장하는가 하면 여성의 성욕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DJ덕의 「삐걱삐걱」은 「정치하는 아저씨들 만날 싸워요/완전히 우리를 가지고 놀아요/우리 망치 보기 민망해요/우리 나라 사람 맞나요」라면서 정계를 「개판」 수준으로 비판한다. 이어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거지같은 세상/×같은 세상」이라고 적나라한 육두문자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나 잘해요」라고 야유한다. ×란 비속어까지 등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물론 비밀채널에 숨겨 발표했다가 물의가 일자 새로 찍어내기는 했지만 이미 20만장 넘게 팔린 음반의 수요자가 청소년들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이소라의 「키스」는 여자의 습기찬 목소리로 노골적인 성욕을 호소하는 노래말로 일관해 아연케 한다. 「날 가져주길 바래/이젠 말로 하지 않겠어/하고 싶어/내 마음 이렇게 뜨거워 있어/그 안에 네가 잠시 들어와/날 식혀주길 바래」라고 끈적하게 호소한다. 욕설이나 선정적인 노래말은 상업주의가 낳은 부산물로 지난해 음반사전심의가 철폐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작년 10월에도 패닉의 2집 수록곡 중 「마마」와 「벌레」가 파격적인 노래말로 물의를 빚었다. 최근 발표한 박상민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한 여성의 다양한 남성편력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무기」는 남성의 상징을 표현하는 셈이다. 이렇듯 대중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가요에까지 망해가는 말들이 난무한다면 장차 우리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걱정스럽다. 나라가 망하면서 말까지 죽어버린 허망한 역사는 세계사에 얼마든지 있다. 다시금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 때가 된 것 같다. 지금도 도처에서 터져나오는 망해가는 말들. 말을 바로세워 나라를 살려야 할 때다. 말은 겨레의 바탕이며 나라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박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