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칸 영화제에서 중국 이란 일본의 작품들이 주요 상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언론들은 우리 영화의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나 그 개탄은 대개 문제의 핵심에 가 닿지 못한 채 내뿜어진 한숨과도 같았다. 그때 나는 김정룡의 「우리 영화의 미학」을 읽었고 어둠 저편에서 뻗쳐오는 한줄기 빛을 보았다. 김정룡에 의하면 우리 영화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영화 감독들의 「작가정신」이며, 작가 정신이란 자신의 세계관을 일관되게 펼쳐나가는 예술가적 자존심을 일컫는다. 그런 전제 아래 그가 공들여 파헤치고 있는 것은,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영화의 절망적인 현황 자체가 아니라 절망의 표층 밑에서 움트고 있는 심층의 미학 의식이었고, 그래서 빛은 보였던 것이다. 그 빛은 사랑의 빛이다. 임권택에서 이명세에 이르는 현역 감독들에 대한 본격적인 개별 작가론을 중심으로 엮인 이 책은 무엇보다도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의 소산이나, 애정과 열정의 눈은 우리 영화의 어떤 실패들을 단순한 좌절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제 그 실패들은 의미 있는 실패로서 내일의 가능성과 연결된다. 그가 첫 작가론의 제목을 「실패한 꿈의 기록」이라 달고 있는 이유도, 또 「성(聖)/속(俗)」 「차가움/불타오름」과 같은 역동적 대립의 주제들을 논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역동성이 새로운 작품으로의 움직임을 낳고 각각의 작품들은 한 작가가 걷는 예술적 「여행」속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그리고 그 이정표들은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 의미망을 구성한다. 그렇게 전체와 부분의 다양한 「맥락」을 조직해나가는 그의 글쓰기 방식은 영화비평답게 영상 분석을 그 기본으로 삼고 있지만, 당대의 중요한 인문사회학적 사유들과 대화함으로써 그것을 살아 있는 문법으로 활성화시키고 있다. 감히 나는, 이 책이 가벼운 인상기로 점철되어온 우리 영화 비평 풍토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해주었다고 적고 싶다. 덧붙이자면 바로 이런 작업이야말로 우리 영화를(더 넓게는 우리 문화 예술을) 세계화하는 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어떤 천재성이 단숨에 우리 영화를 세계화시켜주기를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망상은 없다. 우리 문화의 전체적 맥락을 우리 자신과 세계에 이해시키지 않는 한 천재는 태어나지 않는다. 천재도 맥락 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인성(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