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돌아가시면 하늘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미당 서정주는 요즘 그런 아픔을 느낀다. 「아들과 다름없는」 후배시인 박재삼을 보냈다. 일찍이 박시인을 두고 『한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시인』이라고 했던 미당. 42년전 문학청년 박재삼을 시인의 길로 인도했던 미당의 육성으로 그의 시세계를 기린다.》 진실성에 있어서나 간절함에 있어서나 우리 시단에서 박재삼같은 이를 찾기는 어렵다. 그는 무엇이거나 자신의 진실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다. 시인으로서 박재삼의 탁월함은 그 가락에서 두드러진다. 박재삼은 우리말을 의미개념에 맞춰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감동하는 분수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구사했다. 이는 한국현대시인 중에 찾기 어려운 예다. 시란 산문과는 다른 것이다. 운율과 운(韻)의 짜임을 아름답게 직조하는 것이 시의 생명이다. 김소월과 정지용 한용운 김영랑, 그리고 나는 시를 쓰며 운율과 운의 미학에 고뇌했다. 그러나 후배들에 이르면 거의 모든 시가 어휘의 의미개념에만 치중하는 산문시로 흐른다. 리듬의 중요성을 태생적으로 알아차린 시인은 박재삼 하나라고나 할까. 그러나 박재삼이 참으로 귀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슬픔을 아는 시인이었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시인이란 관세음보살처럼 남의 고통을 대신 서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박재삼은 평생 가난했고 고달팠다. 그러나 그는 제 설움에만 파묻혀 있지 않았다. 저기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라. 박재삼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해 슬픈 모든 사람을 대신해 울고 있지 않은가. 크게 서러우신 관세음보살께 박재삼을 보낸다 〈정리〓정은령기자〉 ▼ 박재삼씨의 대표작 「울음이 타는 가을江」 ▼ 울음이 타는 가을江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울음까지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것네. (59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