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본관의 한 연회장. 지난 11일 오후 3시. 식사시간은 한참 지났지만 원형 테이블 위에는 은어튀김 상하이냉채 보양삼계탕 쇠혀샐러드 등 화려한 요리들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의 풀코스 요리가 각자의 모양새를 뽐냈다. 이 호텔내 23개 식당의 조리장중 최선임인 10여명이 모두 모였다. 일명 「셰프 테이블」. 셰프(조리장)들이 한데 모여 음식의 맛과 모양과 향을 심사하는 자리다. 『구이요리에는 장식을 오른쪽에 놓는게 원칙인데 왜 이 은어튀김 접시에는 왼쪽에 야채장식을 놓았지?』『생선을 접시에 담을 때는 왼쪽에 머리를 둔다는 원칙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당근장식을 먹기 위해 은어떼가 몰려드는 효과를 내보려고요…』 은어코스 요리를 훑어보던 조리팀장 남춘섭씨가 젓가락을 든채 날카롭게 질문하자 옆에 섰던 일식당 벤케이의 박병학 조리장이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부분의 특급호텔에서는 「꿈의 궁전」인 레스토랑에 맛과 향기를 제공하는 각 식당 조리장들의 회의가 거의 매주 열린다. 고객에게 새로운 맛을 선보이기 위한 개발회의이자 새 메뉴를 평가하는 자리다. 이날의 셰프 테이블은 한여름에 대비해 각 식당에서 개발한 대표메뉴를 시식하고 평가하는 자리였다. 한달이상 주방에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찾아낸 메뉴들이 시험대에 오르는 날. 호텔내 식당의 총책임자인 조리팀장과 조리차장, 식당별 조리장들이 심사위원. 새하얀 조리모와 조리복 차림인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경력이 20년은 돼야 맬 수 있는 코발트색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이 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사라져간 메뉴도 셀 수 없이 많다. 이소춘 조리차장은 셰프 테이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각국의 손님을 맞는 특급호텔의 음식맛은 국제적으로 검증받아야 합니다. 중국음식이라도 한국인 서양인 일본인의 입맛을 고루 만족시켜야죠. 또 만든 사람이 미처 생각지 못한 요리의 허점을 손님이 맛보기 전에 바로 잡는 목적도 있습니다』 셰프 테이블에는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중국인 일본인 조리장들이 두루 참석, 다국적회의의 성격도 띤다. 일본인 조리장 야마모토가 선보인 자라수프에 대해 일본어로 설명하자 누군가가 『저걸 먹고나면 밤잠 설치는 것 아니냐』고 수군거려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날 선보인 메뉴들은 몇가지 지적사항을 빼면 맛과 모양면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음식을 내놓았던 조리장들은 큰일을 치러낸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남조리팀장은 『전체적으로 양식과 한식의 식기들이 일식기에 비해 단조로운 인상을 준다. 다음 회의 때까지 식기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보고해 달라』며 이날 회의를 마무리했다. 〈박중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