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문학장르는 그림동화. 그 안에서 상상력을 키우고 선악 분별도 익히지만 동심의 갈증이 「이야기」만으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바로 이 틈새에서 동시가 살아 숨쉰다. 기승전결식 논리 체계가 낯선 아이들에게 동시는 책읽기의 새로운 매력을 안겨주는 「감성의 보물창고」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자녀교육에 온갖 정성을 다 바치는 요즘 부모들. 어린 시절, 오늘의 엄마 아빠는 삐걱대는 나무 걸상을 벗삼아 선생님 풍금 반주에 맞춰 이 노래를 불렀다. 고 이원수선생이 노랫말을 지은 「고향의 봄」. 코흘리개에서 백발 성성한 노인까지 모르는 이가 없는 「국민동요」다. 하교길에 함께 꽃따고 잠자리잡던 그때 그 짝꿍은 지금 무얼 하고 사는지. 창비아동문고(창작과 비평사)의 동시집 가운데 이원수 권태응선생과 시골초등학교 교사 김은영씨의 작품은 된장국 토속 정서를 한껏 담아 콘크리트에파묻힌도시아동의시심을건드린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권태응 「감자꽃」). 할머니집 텃밭이 스쳐 지나는 듯 하더니 어느 틈엔가 옆집 누나의 정겨운 이름이 등장한다. 「꽃이파리 꽃잎마다/너를 부른다/울타리엔 찔레꽃/향기마저 피우며/바람에 하늘하늘/너를 부른다/순희야 순희야/…」(이원수 「너를 부른다」). 서정의 숲을 산책하던 시인은 이제 뙤약볕 현실로 나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모순에 대해 안타까운 속내를 털어놓는다. 「우리나라 벌들은/자꾸 쫓겨나서/지금은 두메 산골에서만 살지/벌이라는 한글자 이름마저/서양 꿀벌에게빼앗기고/이름석자 토종벌로 불리면서…」 (김은영 「빼앗긴 이름 한글자」). 궁상맞은 가난과 부모를 향한 효심, 흙 풀 나무와의 합일(合一). 현대감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관 따위는 잠깐 접어두면 어떨지. 「뿌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박원재기자〉 ▼ 전문가 의견 ▼ 일러스트레이터 남은미씨는 『이원수 선생이 그린 아이들은 험한 시대에 태어나 부모와 이웃을 걱정하면서도 자연의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며 『말의 유희나 기교에 기대지 않고 올곧은 시선으로 현실속 동심과 대화를 나누려 한 점이 가슴에 와닿는다』고 평했다. 남씨는 『군더더기없이 단순하게 쭉뻗은 선으로 사물을 표현한 그림의 대담성이 돋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시각효과에 신경을 덜 쓴 듯한 인상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권기숙씨는 『간혹 요즘 아이들에게 낯선 상황이 등장하지만 정서의 보편성을 살리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며 『몇마디로 압축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의 기능을 잘 살린 수작들』이라고 추천했다. 문학평론가 최지훈씨는 『세 시집은 정감넘치는 전통 동요에서 자유로운 율격의 현대 동시까지 다양한 형식을 망라한게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권태응선생의 시에 대해 『말맛이 부드러우며 리듬이 짧고 간결해서 외우기에 아주 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