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奉天)동은 산자락이 하늘을 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60, 70년대 「무작정 상경」해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산비탈에 다닥다닥 게딱지같은 판잣집을 짓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군데군데 중장비로 파헤쳐진 판잣집과 황토의 잔해가 보이긴 하지만 옛날 봉천동은 이제 사라졌다.사소한 일로 옆집과 악다구니판을 벌이던 아낙이나 늦은 저녁 새끼줄에 연탄 2장을 꿰어 비탈길을 쓸쓸히 오르던 고개숙인 가장의 모습도 사라졌다. 좁디 좁던 봉천동 고갯길은 40m 대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봉천시장 건너편 봉천 2동은 이미 철거가 끝나고 고층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이곳 달동네 8개단지가 오는 2000년대초면 2만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숲으로 바뀌니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봉천동처럼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다. 철거가 한창인 옛 구암골(봉천 5동) 산꼭대기에는 아직도 철거되지 않은 몇몇 집들이 보인다. 이곳 주민들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생활이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정이 넘치던 옛날이 좋았다』고 말한다. 일부 주민들은 『헤어져도 잊지 말자』며 친목계를 하고 있다. 봉천동에는 또 다른 아픔이 있다.보증금 1백만원에 사글세 8만∼9만원을 주고 살던 세입자들이 갈 곳을 잃었다. 서울시내에는 그만한 돈을 주고 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봉천동은 개발연대 서울의 상징적인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윤양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