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학술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으리으리한 회의장의 조명 아래에서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상에 빠져들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교수들이 풀밭위에 둘러 앉아 주제발표를 한다. 주위에는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고 색색의 풍선도 매달려 있다. 발표자 앞에 놓인 주스 잔에 꿀벌 한마리가 잉잉거리며 날아든다. 청중석에는 역시 편안한 옷차림의 학자 학생 엄마 아빠 아이들이 엎드려도 있고 비스듬히 누워도 있다.음료수를 마시고 팝콘도 먹으면서. 장난기많은 누군가가 풍선을 터뜨린다. 펑!잠시 웃음바다가 된 뒤 사람들은 다시 회의에 집중한다. 토론시간에는 모두들 자유롭게, 거리낌없이 의견을 말한다. 좀 두서없이 더듬어도 좋다, 너무 길지만 않다면. 특히 아이들이 신이 나서 손을 든다. 『저요, 저요』 그리고 어른들의 생각이 얼마나 괜찮은지, 아니면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인지에 대해서 침을 튀긴다. 그러면 교사와 부모들은 「이건 여차저차해서 그렇다」고 조목조목 설명한다. 세미나가 끝날 때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사람들이 웃고 소리지르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거짓말처럼 비는 개고 하늘 저편에 커다란 무지개가 걸린다. 박수소리가 들렸다. 내 앞사람 순서가 끝난 것이다. 깜짝 놀란 나는 허둥대며 내몫의 발표를 했다. 끝나고 밖에 나오니 아침부터 퍼붓던 폭우는 웬만큼 잦아들고 있었다. 사방은 아직 컴컴했고 무지개가 뜰 계제는 아닌듯 했지만 그래도 나는 하늘을 보았다. 먼 하늘 저쪽이 그래도 조금은 환해오는 것 같았다. 김서정(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