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국인 정신대(挺身隊)할머니의 기구한 일생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캄보디아 이국땅에서 백발이 된 「훈」할머니. 망향(망향) 50여년만에 한국인을 처음 만난 할머니는 한시간이 넘게 눈물을 흘렸다고 기업인 황기연씨는 전한다. 훈 할머니에게 눈물이야 어디 그것뿐이었겠는가. 낯선 이역에서 버려지다시피 억울하게 한평생을 살아 온 한 한국여인의 내력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죽기 전에 고향 진동으로 가서 살아 있을지도 모를 가족들을 만나보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오』 훈 할머니가 처음 만난 동포에게 통역을 통해 했다는 이 말에서 우리는 핏줄과 고향의 진한 의미를 새삼스럽게 읽는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과 가족이 있듯이 할머니에겐 동족이 있고 조국도 있다. 그러나 이국땅에서 잊힌 채 살아온 지난날의 긴 세월에서 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미국은 술기운에 압록강을 헤엄쳐 건너갔다가 간첩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헌지커의 석방을 위해 모든 외교력을 동원했다. 한국전쟁은 기억속에 묻혀가지만 미국은 한국전 당시 북한지역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송환을 위해 끈질긴 협상을 벌여왔다. 단 한명의 국민, 심지어는 유해 한구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살피는 나라. 그런 보살핌은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국민을 하나로 묶는 애국심의 근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끄럽다. 일제(日帝)암흑기가 끝나고 나라가 독립한 지 반세기임에도 우리는 일제 때 나라 밖으로 끌려간 많은 동포들 문제에 무기력했다. 국력의 한계로만 돌리기에는 당한 사람들의 억울하고 한많은 삶이 가련하다. 망향 50여년의 훈 할머니, 그 한사람부터라도 연고를 찾아내 고향에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