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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윤명로/서양화가 강익중?

입력 | 1997-06-19 20:06:00


사방 3인치짜리 작품들로 한 젊은 작가가 세계화단을 낚았다. 지난 15일에 열린 제47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백남준 전수천에 이어 강익중이 특별상을 받았다. 불황으로 허덕이는 한국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서울의 모든 신문들은 작가의 작품사진과 현지의 사정을 곁들여 한결같이 서양화가 강익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어째서 강익중이 서양화가인가. 뉴욕에 살기 때문에 서양화가인가, 아니면 그가 서양화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서양화가인가. ▼ 東-西 이분법 용어 갈등 ▼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망령들 때문에 이 땅의 화가들이 그려놓은 그림들을 동양화 또는 서양화라고 부르는 관습이 당연한 것처럼 두루 쓰이고 있다. 십여년전이었던가, 내가 몸 담고 있는 서양화과의 졸업생이 미국유학을 떠났는데 현지대학 교수가 성적표를 보더니 너희 학교에서는서부미술(Western Painting)로 가르치느냐고 자못 진지하게 묻더라는 것이다. 너무나 창피스럽고 당혹스러웠던 사연과 함께 학교의 과 이름만이라도 하루 빨리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충고를 받았다. 바꾸어 생각하면 동양화도 중동국가들이 자기들 나라의 그림을 한국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지적을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서부미술을 지망하는 학생들을 해마다 받아들이면서 부끄러운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 원래 서양이라는 지정학적 구분은 송말(宋末) 원초(元初)에 걸쳐 중국인의 지리적 지식의 확대와 서양인의 아시아 진출에 따라 붙여진 용어로 처음에는 태서(泰西) 또는 태극(泰極)이라 불렀으며, 동양이라는 말은 로마시대를 전후해서 지중해 동쪽에 있는 여러나라를 통칭하여 동양(Orient)이라고 일컬었던 역사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 본디 이 땅에 서양화가나 동양화가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을 중심으로 한 화원과 이 주막 저 주막을 떠돌아 다니면서 민족의 애환을 그림으로 담았던 환쟁이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서구문물의 유입과 더불어 태서법(泰西法)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쓰이면서 서양적인 화법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였다. 이후 1915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고희동이 그때에 「서양화의 효시」라는 매일신보의 보도와 함께 서양화가가 되고 만다. 그러나 고희동은 민족의 자존을 생각하며 사회가 원하는 것은 동양화라는 애매한 말을 남기고 동양화가로 전향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육기관이나 화단 또는 미술관에서는 동양화를 한국화로, 서양화를 양화라는 준말로 바꾸어서 쓰기도 하고 동양화와 서양화를 아울러서 회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근 일본에서는 이른바 동양화를 일본화로, 중국에서는 국화로 부르고 있으나 서양화만은 재료의 명칭을 가리지 않고 모두 유화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동 서양화를 아울러서 조선화라고 부르고 있다. 모두가 자국의 전통을 지키려는 국수(國粹)주의적 발상이 깔려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것의 틈바구니에서 용어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른바 한국화라고 했을 때 한국인이 그린 그림은 모두 한국화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세계화 국제화를 외치면서 한국화가 있으면 콩고화도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따위들이다. 사실 전국 1백10개 미술대학에는 한국화과 동양화과 서양화과 회화과 조형예술학과 미술학과 미술학부 조형미술학부 등 다양한 명칭의 과와 학부들이 있다. 그래서 미술대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적지않은 혼란을 주기도 한다. ▼ 우리그림 호칭 통일을 ▼ 최근 어느 월간미술지에서 「우리는 앞으로 한국화가 동양화가 서양화가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화가 또는 작가라고 부르겠다」는 선언적 의미의 광고를 싣고 있다. 앞으로 밀레니엄(천년기)의 개막을 앞두고 우리 화단도 케케묵은 제도나 관습을 버리고 용어의 개념만이라도 하루빨리 중지를 모아 새롭게 정립해야 하지 않겠는가. 윤명로(서울대미대 교수/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