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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어제오늘]미아리고개,점술집 간판만 늘어서

입력 | 1997-06-27 19:41:00


「미아리 고개」 앞에는 습관처럼 「한많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국민가요가 되다시피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울고넘던 그 고개요, 한많은 미아리 고개」로 끝나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51 일대의 이 고개는 시내 혜화동에서 현재의 길음동으로 개칭된 「미아리」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636년 병자호란때 「되놈」으로 통하던 청나라 군사들이 이 고개를 넘어 서울로 쳐들어왔다는 뜻에서 「되너미 재」 「되너머 고개」 「적유령(狄踰嶺)」 등으로 불렸다. 이 고개 옆 돈암동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1950년 6.25 당시 이곳은 아군의 1차 최후방어선이었다. 전쟁이 시작된지 3일만인 28일 인민군 탱크가 이 고개를 넘어오면서 서울이 함락됐다. 그로부터 3개월 뒤 9.28 서울 수복때 이번에는 북한군이 이 고개를 넘어 퇴각하면서 수많은 애국인사를 북으로 끌고갔다. 끌고가지 못한 시민들은 고개옆 성신여대 자리에서 무더기로 학살됐다. 5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미아리 고개 도로변에는 점술가들의 간판이 즐비하다. 높고 험준한 편이었던 고개는 여러차례 공사로 깎여나가 이제는 완만하면서도 시원하게 잘 뚫린 왕복 8차로 대로로 탈바꿈했다. 〈정영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