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에게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연구도 보통사람에게는 아주 쉬운 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요즘 떠들썩한 우리말의 로마자표기법 개정안도 바로 그런 일인듯 싶다. 「아는게 병」이라고 했던가. 제법 우리말을 공부했다는 한 외국인 학자는 우리말의 로마자표기법을 「영원한 논쟁거리」로 단정하고 『종전 표기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체계의 표기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글 음소가 각각 다른 여러 가지발음을내기때문에 로마자 표기가 고약해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강남(gangnam) 북한산(bughansan) 독립문(dog―rib―mun) 등은 악당(gang) 빈대(bug) 개갈비(dogrib)가 연상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ㄱ을 k와 g 두가지로 표기한다면 이런 억지는 없어진다. ㄹ도 r과 l 두가지로 표기하면 간단하다. 신라를silla와sinla, 한라산을 hallasan과 hanlasan으로 각각 표기하는 것은 한자발음을 따르느냐 소리나는대로 적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말의 상당수는 한자에서 나왔으니 순수한 우리말과 구별해 한자 발음대로 sinla hanlasan으로 적어야 한다. 물론 「아리랑」처럼 순수 우리말은 arirang과 같이 소리나는대로 적는 것이 당연하다. 한 음소가 여러 가지로 발음된다는 주장은 한자를 모르거나 한글 자음의 동화작용을 외면한데서 비롯됐다. 학자에 따라서 보통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원칙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한글과 로마자 음운을 1대 1로 한다는 원칙은 모음 표기에서 가능하지 않다. 굳이 그런 원칙을 내세우는 이유도 이해하기 힘들다. 단모음만 해도 「애」(a,e)처럼 하나의 음운을 여러 기호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어찌 중모음 반모음을 1대 1로 표기할 수 있겠는가. 자음의 경우는 ㄱ과 ㄹ만 예외로 하면 한글과 로마자가 거의 1대 1로 맞아떨어진다. ㄷ과 ㅌ은 각각 d와 t로 표기하면 되니 두가지를 혼용해 표기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ㅂ과 ㅍ은 b와 p, ㅈ과 ㅊ은 j와 ch 또는 c로 하면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필자는 컴퓨터의 영문자판에 표시된 한글 자모를 익히지 않고도 영문으로 한글을 찍어내는 방법을 마련하다가 먼저 한글의 표기방법부터 결정돼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런 원칙에 따라 한글의 영문표기법을 만들어보니 로마자 표기가 완벽하게 한글로 환원됐다. 신창호(롬한사서연구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