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측이 현재 가동이 중단된 군사정전위 대신 북한과의 새로운 군사채널을 마련하려는 것은 한반도의 군사적 돌발사태 발생시 원만한 사태수습을 위한 것으로 일단 이해된다. 미국측의 이같은 구상은 북한이 고의적으로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기 위해 군사정전위에 불응한 이후 안정적인 논의채널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한반도의 불안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임시적으로 긴급협상 파트너를 찾는 비상대처보다는 대화상대를 장성급으로 격상시킨 정례적인 협상채널을 확보, 변형된 형태이지만 실질적으로 군사정전위와 같은 안정적인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9월 발생한 동해안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에도 유엔사측 옴스대령(미국)과 북한군판문점 대표부 대좌(우리의 대령) 박임수가 수차례 만나 사태수습을 모색했다. 이같은 방안을 검토한 배경에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을 통해 정전체제가 안정적인 평화체제로 바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으리라는 설명이다. 4자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태도로 볼 때 회담이 장기화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상당기간 한반도의 「불안정 상태」가 지속될 것이며 이 기간에 과도적인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측의 이같은 구상이 어느 정도 구체성을 띤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측 입장은 강경하다. 북한과의 장성급 연락채널을 상설화할 경우 현재 유엔사측 군정위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군 장성의 대표성이 무너지는데다 자칫 북측이 노리는 北―美(북―미)간 직접접촉 통로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우(愚)」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안의 파문이 커지자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제 겨우 4자회담이 닻을 올린 마당에 별도로 북한과의 장성급 채널을 마련하는 것은 회담분위기를 해치는 것』이라며 『이같은 논의가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강조했다. 〈정연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