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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무점포시대의 경영

입력 | 1997-07-03 20:14:00


주변에서 정보화사회라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은 많지만 그 사회가 산업화사회와 얼마나 다른 세상인가를 생각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나이가 제법 든 사람이라면 학창시절 사랑하는 사람에게 러브레터를 띄운 뒤 답장이 올 때까지 며칠 또는 몇 주일을 가슴 죄며 기다렸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떤가. 휴대전화나 삐삐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해 수시로 연락하거나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전자우편을 띄울 수 있기 때문에 편지는 별로 필요없는 세상이 됐다. 이미 전보도 긴급한 일을 전달하기 위한 매체로서의 기능을 잃은지 오래다. 바로 이것이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만들어내는 정보화시대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정보화는 실물이 필요없는 「무실물(無實物)의 시대」를 가능케 한다. 예전에는 공부를 마치고 기업에 입사하면 맨 먼저 서류를 깨끗이 작성하기 위한 펜글씨 연습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서류를 손으로 작성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웬만한 조직에서는 서류없이 컴퓨터 통신망에서 전자결재가 이루어진다. 종이가 필요없는(Paperless) 시대인 것이다. 또한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신입사원이 도심에 있는 높다란 빌딩에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신입사원이 채용되면 으레 책상과 의자 그리고 사무집기 세트를 마련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굳이 사무실에 개인별로 책상이 있을 필요가 없다. 최소한의 공동작업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실제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도 집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재택근무를 흔히 볼 수 있고, 심지어는 해외출장 도중에 떠있는 비행기 속에서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사무실이 필요없는(Officeless)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상거래는 어떠한가. 물건이 필요할 때 전화로 주문하면 몇 분내에 가정으로 배달되는가 하면 최근에는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상거래(Electronic Commerce)까지 등장했다. 이제 기업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유리한 조건의 구매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공급자 입장에서는 더이상 넓은 가게와 커다란 창고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배달주문만을 취급하는 음식점도 생겨나고 있으며 통신판매 전문업체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바야흐로 무점포(Storeless)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화가 인류사회에 가져다주는 효과는 실로 막대하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비용절감의 효과이다. 서류작성, 사무실 임대, 가게 인테리어 작업에 소요되는 실물투자를 거의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효과는 기업경영이 시공(時空)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4차원 경영을 통해 얻어지는 시장 고객 정보와 빠른 의사결정은 기업에 기회선점은 물론 발빠른 환경대응력을 가져다준다. 이런 변화는 산업화 시대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