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2월 수원∼여주간 수려선(水驪線)이 개통됐다. 6년 후인 1937년 개통된 수원∼인천간 수인선(水仁線) 협궤열차와 함께 「꼬마열차」로 불린 수려선은 숱한 애환을 갖고 있다. 수원 화성역에서 출발했던 수려 수인선은 내륙의 곡물과 목탄, 염전지대의 소금 등을 인천을 거쳐 일본과 만주 등지로 나르기 위한 「수탈의 열차」였다. 여주 인천 등지에서 수원, 경성까지 물건을 내다파는 서민들에게는 「생계의 열차」였다. 보따리를 짊어진 초라한 행색의 촌로나 부녀자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 없는 화성역 구내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하루 고작 네번 왕복하는 여주행 협궤열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수원∼여주간 93.4㎞ 운행에 2시간23분이 걸릴만큼 느림보였다. 한때 이 철도를 이용하는 통학생이 5백명이 넘어 시비를 벌이거나 패싸움을 하는 일도 빈번했다. 이때문에 남학생들 사이에 검은 띠를 두른 유도복을 「위력과시용」으로 들고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 덩치가 작은데다 힘도 달려 군데군데 「깔딱고개」에서는 승객이 내려야하는 경우도 많았고 버스와 충돌하면 버스는 멀쩡한데 열차가 전복되는 우스운 일도 있었다. 개구쟁이들은 철로에 못을 올려놓은채 목을 빼고 열차를 기다리기도 했다. 운영도 주먹구구식이어서 연발착은 다반사고 빼먹는 경우도 많았으며 일반 화물이 많은 날에는 신문을 내려주지 않고 열차를 그냥 통과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수려선은 지난72년3월, 수인선은 지난95년12월 폐선됐다. 과거의 화성역은 현재 뉴코아백화점 인계점이 들어서있는 수원시의 중심상가로 변모해 있다. 〈수원〓박종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