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기록된 모든 정치지도자의 생애는 요약하면 공(功)과 과(過)로 구성되어 있다. 차이는 공이 많고 과가 적거나 아니면 그 반대다. 후대들이 앞서간 지도자의 공과를 논하는 것은 과를 되풀이말고 좋은 점을 높이 사자는데 참뜻이 있을 것이다. 요즘 고 박정희대통령의 업적이 한창 거론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보면 약 75%의 응답자가 박정희씨를 현세의 정치지도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박대통령은 우리의 경제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정치적 중립개념으로서의 국력배양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치명적 과오도 남겼다. 업적론에 눌려 그 과오를 외면하거나 눈감는다면 이 나라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박대통령의 역사적 과오를 시정하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박대통령은 3선개헌으로 떨어진 자기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대통령선거에서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을 부추김으로써 정권연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목전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 지역감정의 정치무기화는 우리 국민들의 사고와 정치의식을 철저히 지역적으로 분열, 대립시키는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왔다. 우리 나라는 땅도 좁고 인구도 많지 않은 단일 민족국가인데 지역감정을 조장, 하나의 국민을 두개의 국민으로 분열 대립시켰고 그 부작용이 나날이 불어나 국민통합의 엄청난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박대통령이 저지른 치명적 과오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이 실수 아닌 과오가 우리의 현실 정치생활 속에서 철저히 비판, 극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정당정치는 지역할거주의의 병을 앓게 되었고 급기야는 이른바 3당합당으로 한국의 정치지도(地圖)를 호남대 비호남으로 가르기까지 했다. 이 결과 아직도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이 있고 지역감정의 불씨는 타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존경할만한 인물이 태부족하기 때문에 필자도 박대통령과 같은 업적을 남긴 대통령을 치하하는데 결코 인색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실수는 눈감을 수 있어도 과오까지를 외면할 수는 없다. 지역감정이 국민통합을 망치는 망국병일진대 이 병을 만든 장본인에 대해서는 업적평가에 앞서 국민차원에서의 통렬한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언론이 올바른 박대통령상을 정립하려면 그를 업적 중심으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업적과 함께 과오까지를 아울러 표출, 냉철히 비판하는 진지한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영일(호남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