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 스타]「배반의 장미」 엄정화

입력 | 1997-07-09 07:46:00


팜므 파탈(La Famme Fatale:요부)과 바다. 엄정화(27)의 눈에 담긴 이미지다. 전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개의 이미지.「배반의 장미」를 부르며 『넌 후회하게 될거야, 꺄아악!』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그의 앙칼지면서도 처연한, 닦은 방울같은 눈동자를 보면 「저 여자가 남자를 요절내고야 말겠구나」싶어지면서 저절로 팜므 파탈을 떠올리게 된다. 보들레르의 시 「요괴」에서 「불의 지분에 힘을 얻어/지옥의 힘을 던지고 있다」고 한 눈동자처럼. 그래서일까, 92년 노래 「눈동자」로 데뷔하던 무렵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조사에서 1등을 차지한 엄정화는 아직까지도 군 위문공연을 가면 60만 대군이 전부 팬이라 할만큼 폭발적 인기를 끈다. 지금 우리시대의 문화 코드, 몸과 섹스 어필을 상품으로 포장한 엄정화의 「팜므 파탈」은 그러나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다. 남자가 쓰러지는 순간 『몰라요, 흑흑』하는 앙탈과 함께 그의 가슴에 무너질 것 같은 귀여움, 말하자면 전혀 남자들의 적이 될 수 없는 「천상 여자」의 모습이 엿보이는 까닭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면 엄정화를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 셈이 된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의 눈을 보면 시인들, 혹은 연인들이 제 애인을 두고 말하는 「호수같은 눈동자」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게 된다. 엄정화의 눈은 호수보다 더 깊고 크다.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매니저 배모씨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보고 정화의 눈만 보고 픽업했다. 그의 눈은 바다다』고 했던 말이 절로 생각난다. 어떤 요사스러움도 끼여들 수 없는 순수함의 바다. 그래서 엄정화를 「엄탱이」라 부르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걔처럼 착한 연예인은 없다』고 단언한다. TV가요프로 정상에 오르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을, 요즘같은 「냄비 인기」세상 속에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내가 재능이 있을까』하고 갈등하면서도 『더 하자, 더 열심히 하자』면서 성실하게 살아온 내력이 바닷속에 담겨있는 듯하다. 지난해 비로소 면목동에 34평 아파트를 사서 『더운 물로 샤워하는 집에 살고 싶다』던 가족들의 소원을 풀어준 착한 딸의 속내가 그 눈 속에 흐르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눈이 남아 있다. 분장을 지우고 나면 배시시 나타나는 또하나의 엄정화. 눈꺼풀 위로 또렷이 드러나는 어색한 성형수술 자국. 여기서 만나는 엄정화는 가난을 딛고 일어선 「눈물빛깔의 꽃」이다. 여섯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원주에서 여고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식당을 하는 어머니와 면목동에서 살던 무렵, 못견디게 연예인이 되고 싶던 그는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싸구려 수술」을 했다. 그리고 89년 겨울 MBC합창단원으로 뽑혔고 당대 최고 스타 최진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었으며, 그것이 인연이 됐는지 최진실을 거느린, 역시 당대 최고의 매니저였던 배씨에게 발탁됐다.. 『새까만 시골에서 연예인을 꿈꾸었으니 참 허황된 노릇이었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원하면서, 그리고 꾸준히 노력한 덕에 이만큼 온거라고 믿어요』 30, 40대 나이가 되면 「정말 좋은 배우」소리를 듣고 싶다는 바람. 그때 엄정화의 눈동자는 어떤 빛깔을 띠게 될까.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