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반의 2군설움을 털어내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최종 마무리투수로 우뚝 선 조성민. 야구명문 신일고와 고려대 에이스를 거쳐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던 그는 그동안 야구기량에 비해 푸대접을 받았던 게 사실이었다. 조성민은 이미 신일고 3년때인 지난 91년 1백50㎞에 이르는 강속구를 구사했지만 프로야구 서울팀 1차지명을 임선동(LG) 손경수(OB)에게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 대학때도 사정은 마찬가지. 대표팀 에이스는 연세대 1년선배인 문동환(롯데)의 몫. 4학년때는 2년후배인 손민한(롯데)이 치받고 올라왔다. 게다가 「공포의 92학번」으로 불린 동기생중 박찬호(LA다저스) 박재홍(현대) 임선동 등의 맹활약은 입단후 줄곧 부상치레를 하며 2군에 머물고 있는 조성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더해 줬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국내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않은데다 병역 면제자란 점. 지난 95년말 선동렬의 일본행이 추진되는 사이 조성민은 고교시절부터 그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요미우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결국 계약금 1억5천만엔(약 11억원), 연봉 1천2백만엔(약 9천만원)에 요미우리행을 결정했다. 변화구와 제구력이 문제지만 큰 키에서 내려꽂는 강속구와 면도날 슬라이더가 일품. 〈장환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