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농동에 사는 주부 김모씨(29)는 지난 12일 백화점 네 곳에 들렀다. 세일 때라도 지난 봄까지는 한두 곳에 갈 정도였으나 이번 여름세일 때는 「순례」를 하고 다닌 것. 오전 10시반경 을지로1가의 롯데 본점에서 자신이 입을 12만원짜리 원피스 한 벌과 아이옷 두 벌을 산 다음 승용차를 주는 경품행사에 응모했고 부근의 메트로미도파와 신세계에선 물건을 사지 않고 홍콩여행 항공권과 에어컨을 내놓은 경품행사에 각각 응모만 했다. 오후엔 미도파 청량리점에서 바캉스용품과 반찬거리를 사서 집에 왔다. 조만간 강남의 현대 갤러리아 그랜드백화점에도 갈 예정이다. 김씨처럼 미리 정해 둔 물건을 사거나 경품행사에 응모만 하기 위해 여러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쇼핑 순례족」이 늘고 있다. 쇼핑순례족은 대부분 집에서 신문 기사나 광고 전단 등을 보고 구매품목을 미리 정한 뒤 나서기 때문에 한 백화점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바쁘다 바빠」를 연발하며 여러 백화점을 돈다. 일부 주부들은 몇 명씩 조를 이뤄 쇼핑순례에 나서기도 한다. 서울 삼선동의 주부 이모씨(32)는 『이웃과 함께 가서 경품 응모를 각각 하고 각자 필요한 것을 산 뒤 다시 만나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백화점 직원들은 쇼핑순례족이 올 바겐세일 때 부쩍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는 여러 백화점들이 다투어 경품행사를 열고 있는데다 행사 내용도 최고급승용차 콘도회원권 등 고가경품을 걸거나 경품 물량을 대폭 늘렸다. 요일별 판매행사, 공장도가 이하 판매행사 등 다양한 판촉행사를 준비한 것도 소비자들이 여러 백화점을 돌게 하는 원인. 다른 백화점에 비해 특히 싸다고 판단되는 한 두 가지씩의 품목을 사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그랜드백화점의 직원 박미자씨(30)는 『「원거리 고객」의 수가 늘고 있고 이들의 대부분이 쇼핑순례족』이라고 말했다. 이 백화점의 토털패션 브랜드 아이그너 매장에선 강남구 외에 사는 고객 비율이 지난해 5∼10%에서 올해 20∼25%, 바바리 매장에선 10∼15%에서 25∼30%로 늘었다. 요즘엔 백화점의 고객수가 증가하는 만큼 매출이 늘지 않는 현상을 빚고 있다. 주부 쇼핑순례족의 증가는 이런 현상에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메트로미도파의 경우 지난 6월의 내점고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36만여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75만4천여명이었지만 매출액은 44억여원에서 47억원으로 5.6%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화여대 정순희교수(가정관리학)는 『주부들이 필요한 물건 중 싼 것을 찾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는 것은 계획쇼핑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도를 넘으면 저가구매충동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