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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지성한/부러운 유럽의 「경마문화」

입력 | 1997-07-17 20:48:00


영국의 엡섬(Epsom·지명)더비(Derby·3세마들의 경주)는 금년에도 6월 첫째 토요일에 어김없이 열렸다. 올해로 2백18년째가 되는 세계 3대 경마중의 하나인 엡섬더비는 세계 1, 2차대전의 와중에서도 중단되지 않고 열린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는 영국 국민이 얼마나 경마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는지를 실증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처칠총리도 바쁜 국정중에 경마장을 자주 찾았고 『총리가 되기 보다 더비에 출전하는 마주(馬主)가 되고 싶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총리 퇴임후에는 고향에 내려가 목장에서 말을 사육하며 노후를 보냈다. ▼ 영국선 218년의 전통 ▼ 금년에도 여왕과 가족일행은 엡섬경마장을 가득 메운 경마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면서 모습을 나타냈다. 오후 2시에 경마가 시작되는데도 12시에 도착하여 즐거워하고 있었다. 서울마주협회가 창설된지 4년여. 6명의 대표단이 엡섬더비 때에 맞춰 영국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온 마주협회장이라는 직책 덕분에 모후(母后)를 알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여왕과 함께 앉아 있던 올해 97세의 모후는 『한국 국민도 경마를 사랑합니까』라고 묻는 등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지난해 11월5일 호주에서 열린 멜버른컵 경주에 가보고도 놀랐다. 그것은 그날이 1백년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 일부는 아직도 경마를 도박으로 여기거나 패가망신하는 것이라고 백안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과 호주는 도박을 장려하기 위해 전쟁을 하면서도 경마를 계속했고 이를 위해 공휴일로 지정했겠느냐는 물음에 답할 수가 없다. 국민의 의식수준과 문화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지각(知覺)은 선택적이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그동안 너무 추구했던 권력과 재물에만의 관심은 삶의 또다른 기쁨과 멋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게 했을 것이다. 개인이나 사회는 긴장과 이완의 조화로움이 있을 때 건전해진다. 긴장만 계속되거나 이완만 계속되면 모두 발병하고 만다. 공자도 일장일완(一張一緩)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듯이 경마의 사회적 기능도 이러한데 있다고 본다. 조훈현 국수가 경마장을 자주 찾는 것이 바둑이라는 정신적 부담감을 경마만큼 풀어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라며 끝내 마주까지 된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버트 커밍스라는 호주의 마주는 자기 애마(愛馬)가 우승했을 때 70세의 고령임에도 우승의 기쁨을 이기지 못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평생 기뻐서 울어본 일이 몇번이나 있었나』라고 자문해본 적이 있다. ▼ 도박장 인식 버려야 ▼ 선진국에서는 경마장을 개인책임을 훈련시키는 곳이라고 말한다. 경마장을 찾아가는 것도, 경주마를 선택하는 것도,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마권을 구입하는 것도 전적으로 자기 책임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를 자제하지 못하고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가산을 탕진하는 것은 당연히 본인의 책임이다. 헤밍웨이는 파리에 있는 경마장이 좋아 『나는 파리를 사랑한다』고 했다. 국토가 넓지도 않은 프랑스에 경마장은 2백66개소나 있고 파리 근교에만도 6개소가 있다. 이 경마장 저 경마장 돌아가면서 연중 매일 경마가 실시된다. 헤밍웨이는 이를 「이동축제일」이라고 찬양했다. 우리나라는 일하는 시간에 경마가 웬소리냐고 하면서 토요일과 일요일만 실시하고 있다. 자유와 자제가 함께 할 수 있을 때 우리나라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성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