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현대화작업에 앞장서온 산정 서세옥화백(68). 그에게선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선비의 반듯한 풍모가 풍긴다. 삶과 예술에 한 치의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여년간 그가 살아온 서울 성북동 집도 그렇다. 단순함과 절제의 미학이 숨어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나온다. 그 안에 「무송재(撫松齋)」라는 이름의 한옥과 생활공간이자 작업실로 쓰이는 양옥이 마주보고 있다. 『무송이란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진다는 뜻입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람이 지향해야 할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셈이죠』 3백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조선 건축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무송재는 세계적 건축잡지에 소개됐을 정도로 국내외에 명성이 높다. 요즘같은 장마철이면 아예 문을 닫아걸고 건물보존에 공을 들인다. 무송재에 걸맞게 마당에는 1백년이 넘은 소나무를 비롯, 맹종죽 청죽 식대 등 여러가지 대나무, 우리 강산에서 자생하는 나무와 풀이 사이좋게 어우러져 산다. 바로 이 앞마당과 무송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서재와 작업실이 자리잡고 있다. 장식과 색채를 아껴서 얻은 담백한 분위기. 겉멋을 부린 가구나 장식 소품은 일절 없다. 일부러 꾸미고자 한 흔적도 없다. 한적한 산방같은 적요와 편안함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작업실은 천장이 높고 시원하게 트여있다. 바닥에는 작업중인 종이와 먹을 담는 그릇과 커다란 붓이 놓여있다. 다른 사람이 표현하지 않는, 나만의 양식을 고집하는 창작혼이 숨쉬는 곳. 서재에는 남으로 향한 창문에 길고 큰 책상이 배치돼 있다. 등 뒤로는 책꽂이들을 도서관 서고처럼 일렬로 나란히 배치했다. 동양고전과 한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는 이곳에서 책을 읽고 틈틈이 한시를 쓴다. 『온 집안에 손때묻은 고서가 흘러넘치죠. 그래서 집안 어디에서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꽂이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갤러리 분위기를 풍기는 응접실이나 식당 등 집안 전체에 별다른 치장이 없는 것이 특징. 그 대신 집안 전체를 흰색과 나무색을 주조로 꾸민데다 독특한 조명 등과 다양한 소재의 러그를 활용해 아늑하고 포근한 이미지를 준다. 사람을 창작의 화두로 삼아온 그는 요즘 사람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흰고무신을 신고 문까지 배웅해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로 갈수록 사람들 사는게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단순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네 삶도 그때처럼 맑고 순결하면 좋겠는데…』 〈고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