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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세상읽기]배워서 남준다

입력 | 1997-07-19 07:25:00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분이 있었다. 화물 트럭 조수로 출발해 운전대를 잡아오던 중 어쩌다 사고를 내 운전면허를 취소당했다. 트럭 운전이 생업이었으므로 한시바삐 면허를 따야 했는데 배운 게 없어 필기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지곤 했다. 다섯 번째인가에 겨우 필기시험에 합격하던 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던 아들이 친구의 차를 빌려 아버지를 집까지 모셨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있음을 생색내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아부지요. 여기서 집에까지 갈라모 택시타는 수밖에 없지예. 요새 택시비가 얼마나 하는지 아십니꺼』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생각을 거듭하던 아버지, 한참만에 버럭 화를 내며 하는 말. 『이눔아야. 그래서 애비가 맨날 사람은 배워야 한다 안 카더나! 빼빠지게 고등학교까지 보내놨더마 니는 그것도 안 배우고 뭐 했노!』 어릴 때 어른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씀 가운데 하나가, 「나는 험한 세상에 태어나 부모 덕을 보지 못해 배우지를 못했지만 네 공부만은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강력한 한풀이식 교육 이데올로기 아래 배우고 성가(成家)한 사람이 지금 대부분의 우리 사회 학부모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배움에도 양의 시대가 가고 질의 시대가 온 것 같다. 그때 그 시절처럼 「공부만 해라」고 쉴틈없이 잔소리하는 대신, 혹시 우리 아이가 다른집 아이보다 질이 떨어지는 교육을 받아서 불만스러워하지나 않을까 눈치를 보는 게 요즘 학부모의 모습은 아닌지. 나쁜 학군, 처지는 학교, 불공평한 내신, 무성의한 교사…. 걱정만 하다보면 한이 없다. 학원은 기본이고 봉급으로는 어림도 없는 과외도 불사한다. 문제는 돈이다. 연간 20조원이나 된다는 사교육비, 그게 어디서 나오나. 불법 탈법으로 돈을 벌다가 들켜 카메라 불빛 앞에서 저고리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사회의 지탄을 받는 사람, 그들은 학부모가 아닐까. 아르바이트로 과외 지도를 해서 받은 돈으로 자기 아이 과외비를 내는 학부모는 내가 아는 사람만도 여럿이다. 뇌물을 받아 교사에게 촌지를 건네주는 독직자(瀆職者)는 학부모 아닌가. 촌지를 모아서 과외를 보내는 일부 교사 역시 불쌍한 학부모 아닐 것인가. 배움과 가르침이라는 거룩한 백년지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즈음의 한바탕 희비극은 우리를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한다. 성석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