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현실에 「총체적 위기」라는 극단적 용어가 등장한지도 꽤 오래다. 그러나 바로 사라져버렸어야 할 이 끔찍한 말이 나날이 증폭돼감은 어인 일일까. 또 그 책임소재는 어디일까. 국민들인가. 사회지도층인가. 원리의 잣대로 이론을 정립해온 대학강단의 교수들인가. 아니면 행정가인가 정치가인가.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원리의 부재요 근원의 부재다. 짧은 50년 현대사에서 선진제국의 수백년 국가경영철학을 부분부분만 여과없이 받아들여 접목시키려 했던 과욕의 소산이다. 물리적인 틀 속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단시일에 쏟아부으려 했던 숱한 시행착오의 결과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와 서구식 실용주의가 머리도 꼬리도 없이 뒤섞여버린 어쩔 수 없는 후유증이라고 하겠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일들이 어찌 일조일석에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현실은 현실이다. 과거에 집착해 미래를 경영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자. 늦었다고 깨닫는 시점이 바로 새로운 출발점이다. 정치력 행정력 경제력이 모두 스타트라인에 서야겠다. 그러자면 이성지수(IQ)와 감성지수(EQ)가 절제되고 혼용된 철학을 지녀야겠다. IQ를 앞세우면 분명 정치풍토는 살벌해질 수밖에 없다. 원리의 기본틀에 집착한 나머지 특수상황이 배제돼버리기 때문이다. EQ를 앞세우면 원칙이 상실된 혼란과 무분별만 만연할 뿐이다. 왜냐하면 냉철한 이성의 부재 때문이다. 절제된 IQ의 정치철학에 상황을 분별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경험론적 EQ가 알맞게 혼용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는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야누스의 얼굴」도 「카멜레온의 군상」도 보이지 않을 것이며 주관과 객관의 공존과 조화가 이루어지리라 확신한다. 우리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은 참으로 진단하기 어렵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함께」라는 공존의 윤리가 필요하다. 또 오늘의 현실을 「역사의 장」으로 후대에 고스란히 물려주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IQ와 EQ가 절제와 혼용으로 조화를 이루는 정치행정을 국민 모두는 바라고 있다.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야당을 비롯한 정계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대통령후보로 나선 정치가들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고 또 역사가들의 예리한 필치가 대기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IQ와 EQ가 적절히 절제되고 혼용된 조화의 철학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정승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