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군 화양계곡 어귀에 있는 우리마을은 산좋고 물맑고 인심좋은 축복받은 땅이다. 휴가철이 되면 마을앞 국도에는 화양계곡을 찾아오는 차량들로 붐빈다. 도시인들에겐 여름휴가나 명절의 고향찾기가 삶에 커다란 윤활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일년내내 신바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쌀 개방은 그렇다 치더라도 작년엔 고추값 폭락에 소값마저 곤두박질쳐 농민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농촌이 급속도로 피폐해지고 있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95년 가을 우리 부부를 포함, 가까운 마을의 40대 일곱쌍이 한마음이 돼 「모이자」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즉시 모여 힘 닿는대로 도와주고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다. 우리 모임은 고장의 현안에 대해 많은 토론을 벌였다. 넓게는 화양계곡의 오염원이 될 우려가 있는 경북 상주군의 용화온천 개발에 대한 문제, 좁게는 마을의 빈집 문제 등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노인정을 찾아 어른들을 모시고 재활원을 방문하여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런 친목회의 일이 알려지자 괴산군 청천면사무소에서 유익한 일을 제의해왔다. 우리 모임이 나서서 관내에 있는 1만2천평의 휴경논을 경작해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쾌히 승낙하고 휴경논 경작을 모임 도약의 계기로 삼아보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지난봄 회원들은 수년간 묵힌 휴경논을 일구기 시작했다. 말이 논이지 황무지나 다름 없었다. 큰 나무를 베어내고 트랙터로 여러번 갈아 쓸만한 땅으로 바꾸어 놓았다. 몇주일간 땀흘린 결과였다. 모내기를 할 때는 면장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까지 나와 일을 도와주었다. 지금 그 논에서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가을에 벼를 수확, 많은 양을 불우이웃돕기에 쓸 작정이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민들 대부분이 희망을 잃고 있지만 그렇다고 체념 속에 살 필요는 없다. 우리 모임은 농촌의 아픔을 스스로 달래면서 상부상조의 전통을 되살려갈 것이다. 이광원(충북 괴산군 청천면 신도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