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6명의 경선후보들이 선택할 길은 오직 두 갈래다. 집권여당 사상 처음인 자유경선 과정에서 쌓인 감정을 접어두고 흔쾌히 승자를 돕느냐, 아니면 내친 김에 갈라서서 독자행보를 모색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패배한 경선후보들보다 오히려 감정정리가 어려운 사람들은 경선과정에서 이들을 따르고 지원했던 캠프멤버들. 이들은 때로 후보들보다 더 흥분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던 「전사(戰士)」였으나 이제는 인정과 명분, 의리와 시류(時流)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모습이다. ○…패배한 경선후보 중 李漢東(이한동)고문 진영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결속력이 가장 강한 편이다. 캠프 구성원들이 대부분 과거 민정당 시절부터 인연을 쌓아 일체감이 강할 뿐만 아니라 경선 때 간발의 차이로 결선투표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이들을 묶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중 金榮龜(김영구) 玄敬大(현경대)의원을 비롯한 현역의원 12명과 원외위원장 2명 등 14명은 30일에도 서울 시내 모 음식점에서 만찬을 하며 향후 진로를 논의했다. 이들은 민정계의 정통성을 끝까지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최후의 14인」으로 불린다. 李會昌(이회창)대표에 대한 반감도 강하지만 오랜 세월 몸에 밴 여성체질이 이들의 독자적인 집단행동을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이고문이 당의 울타리에 머문다면 보조를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은 당에 남더라도 말문을 열고 나름대로 목소리를 낼 태세다. 즉 당당하게 비주류의 중심세력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차기정권 하에서는 비주류가 역할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본다. 김영구의원이 『경선결과에 순응해야 한다. 이고문이나 나나 정권재창출에 힘을 합쳐야 한다』며 『그렇다고 이미 당 사무총장이나 선거대책본부장을 해본 사람이 무슨 당직을 맡아서 이대표를 도울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당분간 관망하면서 이대표의 당내정비 작업을 지켜볼 것 같다. 이고문은 『앞으로도 정도를 가겠다』며 이들을 다독거리고 있다. 만약 갈수록 증폭되는 내부갈등으로 당이 흔들리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들의 행보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혼성연합군」인 李壽成(이수성)고문 캠프구성원들의 심사는 보다 복잡하다. 가장 먼저 이고문 캠프에 합류한 康容植(강용식)의원은 이미 이대표에게 『이고문이 안되면 이대표를 돕겠다』고 약속해놓았다. 강의원은 요즘 당직인선 물망에도 오르고 있으나 정작 그 자신은 『아직은 독자행동을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비교적 늦게 가세했지만 「반(反) 이회창」 노선을 선명하게 표방, 경선종반 이고문에게 큰 힘을 실어줬던 徐淸源(서청원)의원 등 정발협 출신의 민주계 인사들도 비교적 담담하게 경선결과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서의원의 한 측근은 『서의원은 원만하게 정권재창출이 이뤄지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에 남아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고문 진영에 가담한 민주계 인사들이 이고문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할 것으로 속단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들 또한 적극적으로 주류측에 합류할 생각은 아니다. 李在五(이재오)의원은 『이제 여당에도 「노(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며 『탈당하지 않고 당내의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남겠다』고 말했다. 서의원과 이의원 등 이고문을 지지했던 원내외위원장 40여명은 금명간 연구회 형식으로 계보모임을 만들 예정이다. ○…경선과정에서 급부상한 인기를 업고 단기간에 급성장했던 李仁濟(이인제)경기지사 캠프의 분위기도 아직 갈피를 잡기 힘들다. 정발협에 몸담고 있다 경선막바지에 이지사 지지를 선언했던 김운환 의원을 비롯, 원내외 위원장들은 경선 후 현실에 적응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김의원은 경선 직후 지구당관계자들에게 『경선이 끝났는 데도 서로 분열하고 헐뜯는 것이 우리 정치의 병폐다. 이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해 정권재창출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 이미 감정정리를 끝낸 듯하다. 金映宣(김영선) 元裕哲(원유철)의원 등 소장파도 『이지사가 앞으로도 국민의 편에 서있다면 돕겠지만 경선 때의 인연만으로 정치행로를 계속 같이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인으로서 이대표가 대통령후보로 결정된 만큼 열심히 도울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곽에서 이지사를 도왔던 사람들은 아직도 대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이지사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며 미련이 많다. 이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정국추이를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지사의 개인사무실인 청계포럼 사무실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직전 중도포기한 朴燦鍾(박찬종)고문을 도왔던 핵심참모 10여명은 30일 1박2일 일정으로 서울 근교에서 단합대회를 갖고 향후 거취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지난 95년 서울시장선거 때부터 도왔던 사람들. 이들은 시간이 좀 지나면 박고문이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여야 3당후보 중 영남권후보가 없고 부산지역의 「반 이회창」 정서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의식, 박고문의 독자출마를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이회창대표 진영은 승리축하 분위기가 가시기도 전에 「논공행상」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서울 여의도 경선사무실에서 일했던 실무진들은 우선 「당 입성」을 꿈꾼다. 이대표의 핵심측근 가운데는 李興柱(이흥주)전총리비서실장 陳永(진영)변호사 등이 특보 등으로 당에 첫발을 디딜 것으로 보인다. 이대표의 경선 캠프에 참여했던 초 재선급 의원과 원외위원장 대부분은 이번 주내에 발령날 특보단에 합류하기를 원하는 눈치. 대선기획단이나 선거대책위원회 등에서 일할 기회가 있지만 하루라도 빨리 「보험증」을 받아놓으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대표측 핵심지도부는 다른 캠프의 「인재」를 중용하려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 金德龍(김덕룡)의원 캠프의 孟亨奎(맹형규)의원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이대표 측근의원들과 원외위원장 및 당외인사들은 대부분 복수부총재 등 집단지도체제에 부정적이다. 측근들은 『어떻게 얻은 승리인데 이제와서 숟가락 하나 얹어 놓으려고 하느냐』고 불만을 표시한다. 〈임채청·최영훈·박제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