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1년 늦가을 야구시즌이 끝난 뒤 국내 야구계는 무척 떠들썩했다. 당시 고교 졸업을 앞둔 야구선수 가운데 10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하다는 초특급 투수들이 여러 명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진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향후 프로야구나 대학야구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을 만큼 유망한 선수들이었다. 프로야구단의 스카우트 담당자나 대학 감독들이 이들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은 당연했다. ▼최고 거물로는 현재 프로야구 LG팀에서 활약중인 林仙東(임선동)이 꼽혔고 일본 요미우리팀에서 뛰고 있는 趙成珉(조성민), OB팀에 입단했다 은퇴한 S선수 등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임선동은 국내 최고 투수였던 宣銅烈(선동렬)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들과 동급생으로 공주고에 재학중이던 朴贊浩(박찬호)선수는 가능성만 인정받았을 뿐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고교 졸업후 5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의 명암은 엇갈려 있다. 박찬호는 미국에 진출, 메이저리그에서 10승을 거두며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 등극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일본에 간 조성민은 그동안 부진했지만 올시즌 3세이브를 거두며 비약을 꿈꾸고 있다. 이에 비해 랭킹 1위였던 임선동은 국내에서 올해 5승5패의 성적을 기록, 평범한 투수가 되어 있고 또 다른 국내파 S선수는 이미 야구를 그만둔 상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선진국의 같은 또래보다 학업성적면에서 월등하다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역전되는 사례가 많다. 혹시 이들 동기생 선수들의 현 주소가 인재양성과 관련된 국내의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매우 심각하다. 우리 사회가 모르는 사이에 천재를 둔재로 만든다면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