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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전기설비작업 아버지,아들 호루라기소리 못듣고 참변

입력 | 1997-08-03 20:08:00


『흑흑…. 아버지 이제 그만 눈을 뜨세요. 다음에는 좀 더 세게 호루라기를 불게요』 지난 2일 오후 6시반경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아현터널 안. 이곳에서 전기설비작업을 하다 방금전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아버지 卞茂成(변무성·45·경기 여주군 여주읍)씨의 피투성이 시신을 부둥켜 안고 志旻(지민·13·천호중 2년)군은 몸부림쳤다. 여름방학을 맞아 터널작업하는 아버지를 돕겠다는 생각으로 열차가 진입할 때 터널 입구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열차감식원」의 일을 맡은 지민군은 자신의 호루라기 소리가 작아 아버지가 변을 당했다는 죄책감에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날 승객을 싣고 서울역에서 수색 방면으로 가던 열차가 이 터널을 지날 때 변씨 등 7명의 설비공이 일하고 있었으나 변씨만이 40m 간격으로 설치돼 있는 대피장소로 미처 피하지 못했다. 지민군의 호루라기 소리와 「삑삑…」하는 열차 경고음에 터널안에서 일하고 있던 다른 인부들은 대피장소로 몸을 숨겼으나 시커먼 터널 반대편에서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혼자 일하던 변씨는 이를 듣지 못한 것. 지난해 10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까지 잃은 뒤 이모집에서 누나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민군은 공사 현장으로 다시 뛰어든 아버지를 도우려고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난달 20일 열차감식원으로 나섰다. 터널안에서 뒹구는 아버지의 안전모를 움켜 쥔 지민군은 사고발생 2시간 전 새참으로 콩국수를 먹고 있을 때 『못난 애비 때문에 고생이 많다』면서 자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모습에 북받치는 슬픔을 감내하지 못했다. 지난해 겨울 집에서 쫓겨나면서 아버지의 업무용 트럭에서 생활을 했던 지민군은 무일푼으로 나앉은 아버지에게 라면 한그릇을 사달라는 말도 못하고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공사현장에서 밤을 지새웠다. 기름값이 없어 차안에 가스레인지를 켜놓고 몸을 녹이며 밤잠을 설쳤던 것에 비하면 날벼락같은 아버지의 죽음을 맞기 전까지는 그래도 행복했다. 3일 오후 변씨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서대문구 세란병원 영안실(02―737―8499)에는 변씨의 친척과 이웃 20여명이 오열하는 부인 李炳燮(이병섭·41)씨와 딸 志允(지윤·18·영파여고 3년) 志仙(지선·16·한영고 1년)양을 위로하고 있었다. 서울지방철도청의 한 관계자는 『공사현장이 많아 일일이 공사감독관을 현장에 보낼 수 없어 어린 학생이 「열차감식원」역할을 하고 있는 줄 몰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박정훈기자〉